[우울한 해운업]'파리날리는' 전세계 무역항…끝모를 침체
경기 부진에 아시아·유럽 주요 무역항 물동량 급감
한때 북적이던 아시아와 유럽의 무역항들이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26일 보도했다.
중국의 상하이, 독일의 함부르크를 위시한 두 대륙의 대형 무역항들이 글로벌 무역의 성장률 둔화와 원자재 가격의 침체로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글로벌 무역 성장률은 지난해 2.8%에 그치면서 4년 연속 3%를 밑돌았다.
중국 최대 항구인 상하이의 하역기지에 자리잡은 한 창고가 초라한 사정을 말해주고 있다.
3층짜리 이 창고에 보관된 물품은 영국과 홍콩에서 수입된 고급 청바지와 티셔츠, 재킷뿐이었고 그 대부분은 근 2년간 반출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지난 연말에 몇몇 와인 수입업자들이 철수하면서 창고 내부에는 빈자리가 커졌다.
인근 장화방(張華濱) 터미널 주변의 도로에는 빈 트럭들이 줄지어 있고, 일거리를 기다리며 줄담배를 피워대는 운전기사들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트럭 운전기사 쑨스훙(45)은 2010년만 해도 소속 회사가 40여대의 트럭을 굴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3년 전에는 한 달에 1만2000위안을 벌었는데 요즘은 6000~7000 위안 정도"라고 말했다.
무역이 활황이던 시기에 앞다퉈 대형 선박들을 발주했던 해운업계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의류와 신발, 자동차 부품, 전자기기, 핸드백을 포함해 각종 교역 상품의 95% 이상을 운송하는 컨테이너선 업계는 구조조정과 비용 절감에 분주하다.
무역 침체가 미치는 영향은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항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경기 둔화와 사정 활동이 철광석과 디자이너 스카프, 신발 등과 같은 각종 상품에 대한 수입 수요를 침체시켰기 때문이다. 유럽의 미진한 경기 회복 속도도 이 항로의 물동량을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중국과 유럽연합(EU) 사이의 수출입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중국의 수입은 지난해 14% 감소했고수출도 3% 줄었다. 올해 1분기에도 수입과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 감소할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아시아의 주요 무역항인 홍콩의 사정도 좋지 않다. 1분기 물동량은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했고 지난해 전체로도 1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뉴욕에 소재한 카라차스 머린 어드바이저스의 바실 카라차스는 "업계 관계자들이 실제로 당황하는 것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런던의 컨테이너업종 애널리스트인 조너선 로치는 아시아-유럽 항로에서 지난해 100편의 정기 화물선 운항이 취소됐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선 운항사인 머스크 라인은 운임 급락에 대처하기 위해 4000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신규 선박 발주를 보류했다. 한국의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산업은행과 채무 재조정 협상을 벌이는 중이다.
글로벌 무역이 둔화된 데는 원자재 가격의 침체와 아시아의 전반적인 성장률 둔화, 유럽의 느린 경기회복 속도를 포함한 다양한 이유가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브라질 등 큰 무역시장이 정치, 경제적 위기로 흔들리고, 과거에 글로벌 무역에 촉진제 역할을 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같은 대형 무역협정이 없다는 점도 침체의 또다른 배경이다.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등 미국의 무역항들은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덕분에 물동량 증가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수입업자들이 대규모의 재고를 안고 있고 재고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해외 주문을 줄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아시아와 유럽의 대형 무역항을 보면 가까운 장래에 상황이 호전될 기미는 엿보이지 않는다.
상하이항의 지난해 화물 처리량은 2014년보다 5%가 줄어든 5억1300만t이었고 올해 1분기에도 4%의 감소율을 나타냈다. 컨테이너선과 건화물선의 유럽 환적기지인 벨기에의 제브루게항의 화물 처리량은 지난 15개월 동안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홍콩 해운업협회의 윌리 린 회장은 유럽에서 수입하는 자동차 부품이 지난해 물량 기준으로 최소 13%가 줄어들었고 고급 의류와 제화류를 포함한 사치품의 수입은 15%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무역항들의 최근 상황에 대해 30% 적은 컨테이너 박스가 입항하고 10% 적은 박스가 출항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유럽 해운업계에서도 우울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유럽해운업협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하반기부터 지난해 하반기 사이에 북유럽 항구 입항이 1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에 유럽-아시아 항로의 기항 취소 사례도 두 배로 늘어났다.
벨기에 제브루게항을 운영하는 APM터미널스의 한 관계자는 목재와 비료, 금속, 폐플라스틱, 중장비 등의 중국 수출이 계속되고 있지만 대부분 품목이 물량 기준으로 최고 30% 줄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리플 E'급으로 분류되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왕래도 줄어들고 종종 적재량을 채우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과 벨기에의 안트베르프에 이어 유럽 3위의 무역항인 함부르크항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 항구의 지난해 컨테이너선 입출항은 2009년 이후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