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슈퍼달러'에 짓눌린 아시아...'외환위기' 공포 확산

역내 양대 통화 中위안, 日엔 급락세...1997년 亞외환위기급 스트레스

2022-09-26     김신회 기자
사진=픽사베이

달러 초강세 바람에 아시아에 다시 외환위기 공포가 번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최근 13년 6개월 만에 1400원을 돌파한 가운데 시장에서는 역내 양대 통화인 일본 엔과 중국 위안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통화긴축 공세를 펼치고 있는 데 반해 중국 인민은행(PBOC)과 일본은행(BOJ)은 통화완화 기조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엔/달러 환율은 지난주 한때 24년 만에 처음 145엔을 돌파했고, 위안/달러 환율은 이달 초 심리적 저항선인 7위안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엔화와 위안화의 약세 속도가 더 빨라지면 아시아지역 다른 통화들이 받는 약세 압력 또한 더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26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비시누 바라탄 미즈호 은행 싱가포르 주재 경제·전략 부문 책임자는 "위안화와 엔화는 정신적 지주"라며 "이들 통화의 약세는 아시아지역 내 무역, 투자에서 통화의 불안정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몇몇 측면에서 보면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의 스트레스가 나타나고 있다며, 통화 약세가 더 심해지면 아시아 금융위기가 불거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달러인덱스 추이 /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최근 2002년 5월 이후 처음 113을 넘어섰다.

◇中·日, '중력' 같은 역내 영향력...'환율전쟁' 악순환 우려도

블룸버그는 중국과 일본이 그 경제 규모와 무역관계를 통해 역내에 미치는 영향력은 중력처럼 절대적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지난 13년 내내 동남아 국가들의 최대 무역 파트너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일본은 세계 3대 경제국으로 아시아지역에 막대한 자본과 신용을 공급해왔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위안화와 엔화의 폭락이 글로벌 큰손들을 자극해 아시아 전역에서 대규모 자본이탈을 촉발하면 전면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통신은 또 위안화와 엔화의 약세가 아시아지역 다른 나라들의 통화 평가절하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고 봤다.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통화 약세 유도 경쟁, 이른바 '환율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품 가격도 내리기 때문에 수출경쟁력이 세진다. 중국과 일본의 통화 가치가 하락하면 무역상대국은 피해가 불가피한 셈이다.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추는 개입에 나서기 쉽다. 

통화 약세는 반면 수입품 가격을 끌어 올린다. 안 그래도 심각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 거세질 수 있다. 

타이머 베이그 DBS그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 국가들에는 금리보다 통화 리스크가 더 큰 위협"이라며 "결국 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수출국이기 때문에 1997년, 1998년(외환위기)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위안/달러(달러당 위안, 오른쪽), 엔/달러(달러당 엔, 왼쪽) 환율 추이 / 자료=FRED

◇엔화-신흥국 통화 상관계수 2015년 이후 최고 

중국과 일본의 역내 영향력은 금융시장에서 더 두드러진다. 뱅크오브뉴욕(BNY)멜론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 분석에 따르면 아시아 통화지수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4분의 1이 넘는다. 또한 엔화는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세 번째로 많이 거래되는 화폐다. 위안화와 엔화의 약세가 아시아지역 다른 통화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건 달러가 강세 행진하면서 위안, 엔화와 역내 다른 통화들의 움직임이 점점 더 비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엔화와 MSCI신흥시장 통화지수의 상관계수는 최근 0.9를 넘어 2015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두 자산의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우면 자산 가격이 같은 방향으로, -1에 가까우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블룸버그는 위안과 엔의 약세 속도가 빨라질수록 역내 다른 통화에 대한 약세 압력이 더 거세질 것으로 내다봤다. 


◇亞외환위기 발화점은..."엔/달러 150엔이 변곡점"

전문가들은 달러 강세발 아시아 금융위기의 방아쇠가 언제 당겨질지를 두고 이견을 다투고 있다.

짐 오닐 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은 엔/달러 환율이 150엔에 이르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규모의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전면적인 위기를 터뜨릴 환율 수준을 특정하기보다 통화 약세 속도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아닌다 미트라 BNY멜론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 아시아 거시·투자전략 부문 책임자는 "엔과 위안의 급격한 추락이 다른 지역 통화에 중압감을 줄 수 있다"며 특히 위안화의 급격한 평가절하가 아시아지역 다른 통화에 더 큰 문제가 될 것으로 봤다.


◇다시 쪼그라든 외환보유액, 경상수지 적자 '적신호'

아시아지역 국가들의 상황이 외환위기가 터진 1990년대 말보다 훨씬 나아진 만큼 위기의 재발 가능성을 너무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 이후 외환보유액을 대거 늘리고, 달러빚 의존도는 많이 낮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 들어 아시아지역 국가들의 외환보유액이 오히려 쪼그라든 게 환율방어 효과가 별로 없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스탠다드차타드에 따르면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신흥국들이 외환보유액으로 치를 수 있는 수입대금은 7개월치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2008년 이후 최소를 기록 중이다. 연초 10개월치, 지난해 8월 16개월치에서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외환보유액이 감소한 건 환율방어에 이미 막대한 비용을 들였다는 의미다.

레짱튀 맥쿼리캐피털 전략가는 경상수지 적자국들의 통화가 가장 취약하다며, 원화와 필리핀 페소, 태국 바트 등을 문제 삼았다. 한국은 지난 7월 10년여 만에 첫 상품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8월에는 무역적자 규모가 사상 최대로 나타나 3개월간 흑자를 이어온 경상수지가 8월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신회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