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오너가 경영수업 끝?...'3세 경영' 본격 시동
롯데家 신유열 등 오너가 3세 경영 전면에 성과따라 명암 갈려...무리한 승계 구설수도
그동안 경영 일선에 등장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던 롯데가(家) 3세 신유열 씨가 아버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해외 출장에 동행하면서 세간의 화제다. 신 씨 외에도 유통업계 내에서 창업주 3세들이 속속 일선에 모습을 드러내며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대부분의 3세 기업인들은 계열사에 입사해 고속 승진을 이어가며 차기 오너로서의 위치를 찾는 중이다. 이른 승진만큼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도 떠안고 있다.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고(故) 이건희 회장의 경우 반도체 사업에 과감히 투자해 회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면서 독자적인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유통업계의 3세들에게도 이런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현재 유통가 3세들은 스스로의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직 아버지의 후광과 보살핌이 절실한 경우도 있다.
◇롯데 신유열, 경영일선 데뷔 임박했나
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출장길에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일본 지사 상무가 동행했다. 부자가 함께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 상무는 지난달 31일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국가주석과 신 회장이 회동한 자리에도 함께 참석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투자 논의와 함께 부산박람회 유치 홍보 활동을 펼쳤다.
한국과 일본에서 입지를 다진 롯데가 다음으로 중요하게 공략하고 있는 시장이 바로 베트남이다. 그동안 신 회장은 응우옌 주석을 여러 차례 만나며 사업 논의를 벌였다. 이런 자리에 신 상무를 대동한 것은 본격적인 경영 수업이라는 게 유통업계의 설명이다.
이밖에 주목받는 유통가 3세로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아들 담서원 씨가 있다. 담 씨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7월 오리온 경영지원팀 수석부장으로 입사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담 씨가 임원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SPC·CJ제일제당 등 본격적인 3세 경영 시동
이미 경영 현장을 누비며 입지를 다지고 있는 3세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SPC의 허진수·희수 형제다.
허진수 파리크라상 사장은 지난해 승진으로 후계자 자리를 공고히 했다. 파리크라상은 SPC그룹 지주사다. 오너 일가가 파리크라상을 지배하고 파리크라상이 외식브랜드(파리바게뜨, 파스쿠찌, 쉐이크쉑 등)와 계열사를 지배한다.
허 사장이 집중하는 분야는 글로벌사업이다. 글로벌BU장으로 일하며 M&A 등에서 활약 중이다. 최근에는 말레이시아 현버자야 푸드그룹과 합작법인(조인트벤처)을 설립해 할랄인증 제빵공장 건립에 착수했다.
차남 허희수 SPC그룹 부사장도 지난해 경영에 복귀한 뒤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비알코리아 전략총괄임원으로 일하며 배스킨라빈스와 던킨의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 중이다. 지난 2016년에는 쉐이크쉑, 2020년에는 에그슬럿을 국내에 도입하고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등 경영 능력에서는 이견이 없다.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도 중책을 맡고 있다. CJ제일제당이 지난해 신설한 전략기획 1담당으로 스타트업 투자와 식물성 식품 사업, 그리고 미국 시장을 담당한다.
최근 CJ제일제당이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채택하고 추진 중인 식품 전문 브랜드 '플랜테이블'(PlanTable)의 성장에 그의 몫이 있다는 평가다.
◇아직 '인큐베이팅' 필요한 3세들
이어 경영에는 참여하고 있지만 아직은 능력 면에서 날개를 펴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 있는 3세들도 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장녀 서민정 씨는 올해부터 럭셔리 브랜드 디비전 AP팀에서 근무 중이다. 서 씨는 임원은 아니지만 일명 '서민정 3사'(이니스프리, 에뛰드, 에스쁘아)의 주요주주다. 지분율은 이니스프리 18.18%, 에뛰드 19.5%, 에스쁘아 19.52%로 매년 서 씨에게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리고 아모레퍼시픽의 완전 자회사 코스비전이 '서민정 3사'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코스비전은 화장품을 제조해 아모레퍼시픽 계열사에 납품하는 곳으로 지난해 매출원가율(매출 대비 매출원가의 비율)이 95%를 넘는다. 2020년에는 매출원가율이 100%를 넘기도 했다. 판관비와 금융비용 등을 감안하면 물건을 납품하고도 손해를 보거나 극히 적은 이익을 남기고 있다는 얘기다.
코스비전은 '서민정 3사'에 대한 매출 비중이 71.9%에 달하기도 한다. 향후 서 씨가 승계자금으로 사용할 배당금 조성에는 코스비전의 희생이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주거래하는 계열사들의 실적이 낮아지면서 코스비전의 주문 규모 및 조업률 역시 큰폭으로 떨어져 원가상승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며 "코스비전의 높은 원가율은 경영승계자금 마련과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신동원 농심 회장의 장남 신상열 상무도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3세다. 다만 아직 경영능력 면에서는 입증할 게 많다는 평가다.
신 상무가 맡은 업무는 구매담당으로 원자재 수급과 생산 원가 담당을 관할한다. 회사의 수익을 좌우하는 자리다.
농심은 지난 2분기 24년 만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곡물 가격 인상에 따라 수익성이 악화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라면 가격 인상에 나섰다.
라면값 인상은 농심 외에 팔도도 참여했지만 라면 4사(농심·오뚜기·팔도·삼양)중 손실을 공시한 곳은 농심뿐이다. 이에 유통업계에서는 신 상무의 경영능력을 도마 위에 올리고 있다.
◇무리한 3세 경영 승계로 구설수 오르기도
한편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장남 홍진석 씨는 회사의 위기 속에 개인적인 문제까지 맞물려 구설수에 올랐다.
홍 씨는 지난해 4월 회삿돈을 부정하게 사용했다는 문제로 해임된 지 2개월도 지나지 않아 전략기획담당 상무로 복귀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문제와 별도로 아버지 홍 회장이 경영권을 한앤코에 매각하려다가 파기한 일로 법적 분쟁에 휩싸이면서 홍씨 일가의 경영 승계 자체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사실 2세를 넘어 3세로 경영권이 승계되는 것은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해외에서는 사례가 거의 없는 일"이라며 "그만큼 능력에 대한 검증과 평가가 더 엄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