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팀 트랜지토리 2.0'...인플레이션 '꼭지'에 베팅하는 이유

"인플레이션은 일시적" 주장 고수하는 이들...급격한 금리인상 역풍 경고

2022-06-06     김신회 기자
세계적인 공급난이 한창인 가운데 지난 5월 17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메드포드의 한 식료품 매장 선반 곳곳이 텅 비어 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팀 트랜지토리'(Team Transitory)가 돌아왔다."

블룸버그는 6일 '팀 트랜지토리'가 복귀해 급격한 금리인상의 실패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고 보도했다.

팀 트랜지토리는 최근의 인플레이션을 '일시적'(transitory)이라고 보는 이들을 말한다. 물가상승세가 곧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데 베팅한 이들은 인플레이션에 맞선 중앙은행들의 대폭적인 금리인상이 경제에 역풍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 세계가 역대급으로 치솟는 물가와 씨름하고 있는 만큼 곧이 듣기 어려운 말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특히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한때 팀 트랜지토리에 속했지만, 인플레이션에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에 전향한 지 오래다.

연준은 지난 3월 2018년 이후 첫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뒤 지난달에도 추가 인상을 단행했다. 5월에는 2000년 이후 처음으로 금리 인상폭을 평소의 두 배인 0.50%포인트로 확대했다. 수십년 만에 최고로 치솟은 물가상승률에 대한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연준은 6월과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같은 폭의 금리인상을 단행할 전망이다.

연준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올해 금리인상을 단행한 중앙은행은 60곳이 넘는다. 팀 트랜지토리의 주장이 공허하게 들릴 만하다.

블룸버그는 그럼에도 이들이 아직 '인플레이션 대논쟁'에서 승기를 잡을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논쟁에 복귀한 팀 트랜지토리, 이른바 '팀 트랜지토리 2.0'의 주장을 짚어본다.


◇과도한 통화긴축 '실패' 우려

연준을 비롯한 중앙은행들은 금리인상 등 통화긴축의 속도를 조정해 경기연착륙(소프트랜딩)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팀 트랜지토리는 회의적이다. 이들은 중앙은행의 과도한 긴축이 경제활동을 위축시켜 경기침체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물가상승률은 중앙은행들의 목표치까지 밑돌게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섣부른 통화긴축의 실패 사례도 적지 않다. 가깝게는 유럽중앙은행(ECB)이 2011년 금리인상에 나섰다가 같은 해 다시 금리를 낮춰야 했고, 일본은행(BOJ)은 2006년 금리인상에 돌입했다가 2008년 다시 통화완화 기조로 돌아서야 했다. 두 경우 모두 경기악화가 발목을 잡았다. 

로빈 브룩스 국제금융협회(II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트위터에 "글로벌 경기침체가 닥치고 있다"며 세계적인 통화긴축 바람의 역풍을 경고했다. 그는 유로존의 소비자심리와 미국의 주택경기 냉각, 중국의 2분기 성장률 둔화 등을 근거로 들었다.  

미국 기준금리 추이(상단기준 %) /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재고과잉...수요 줄면 어쩌려고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가운데는 과잉재고를 문제 삼는 이들도 많다. 소매업체들이 인플레이션 가속 가능성과 공급난에 대비해 막대한 재고를 쌓아두고 있는데, 소비자들이 금리인상 압력에 씀씀이를 줄이면 가격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뉴욕증시의 S&P500지수에 속한 시가총액 10억달러 이상의 소비재 기업들은 최근 1년 새 재고를 26% 늘렸다고 한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재고과잉에 따른 리스크(위험)가 커지고 있다며, 특히 재량소비재와 기술재 부문의 취약성을 우려했다.

월가 스타 매니저인 캐시 우드(일명 '돈나무 언니') 아크(ARK)인베스트 최고경영자(CEO)도 지난달 트위터를 통해 미국 대형 소매점인 월마트와 타깃의 기록적인 재고 수준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연준이 단기적인 공급망 병목현상 그 이상을 볼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주택시장 냉각 조짐...'조정' 경고등

팬데믹이 한창일 때 뜨거웠던 주택시장의 열기도 식어가고 있다. 주택가격은 보통 물가지표 항목에 포함되지 않지만, 주택가격이 떨어지면 물가지표에 반영되는 임대료가 낮아져 인플레이션 압력이 낮아질 수 있다.

팬데믹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주택가격은 전 세계적으로 치솟았다. 각국 정부의 대규모 재정부양정책과 중앙은행의 통화완화정책으로 시중에 막대한 자금이 풀리고 금리가 역사적 저점으로 낮아진 덕분이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전 세계 실질 주택가격 연간 상승률은 2021년 3분기 5.4%에서 같은 해 4분기 4.6%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글로벌 주택가격은 금융위기 직후보다 27% 높다는 게 BIS의 분석이다. 금리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주택가격이 더 떨어질 여지가 크다는 얘기다.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명예교수는 최근 트위터에 모기지 금리가 뛰고 스태그플레이션 리스크가 고조되고 있다며, 주택거품이 조정을 맞을 때가 됐다고 썼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불황 속에 물가가 치솟는 현상이다. 루비니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새 집 평균 가격은 지난해와 올해 각각 전년대비 21%, 31% 올랐다.


◇'코로나 봉쇄' 중국발 디플레이션 바람

중국 산업생산 증감률(전년대비 %) /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중국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출 디플레이션 쇼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중국의 무관용 정책이 그 배경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코로나19 봉쇄정책은 특히 중국이 대거 사들이는 글로벌 원자재 가격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중국의 산업생산이 1%포인트 둔화하면, 국제원유 가격이 최대 5% 떨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같은 경우라면, 중국이 전 세계 수요의 40%(2020년 기준)를 차지하는 구리 가격은 2%가량 하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니켈, 아연, 주석의 전체 수요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30%에 이른다.


◇세계적인 '일본화'...장기불황 그림자

전 세계가 일본식 장기불황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은 1990년대 초 자산시장 거품이 터지면서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장기불황에 빠졌다. 일본은행(BOJ)이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심지어 마이너스 금리에 이르기까지 유례없는 통화부양 조치를 잇따라 취했지만 경기회복은꺼녕,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불황의 골을 키우는 악순환만 이어졌다. '잃어버린 10년'이 '잃어버린 30년'이 된 셈이다.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지난 4월 2.5%로 2015년 이후 처음으로 BOJ의 목표치인 2%를 넘겼지만, 지속력을 의심하는 이들이 많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치솟은 에너지 가격이 전체 상승세를 주도했을 뿐 임금상승세는 여전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1%에도 못 미친다. BOJ도 물가상승세는 일시적이라는 판단 아래 통화완화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기우치 다카히데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NRI) 이코노미스트는 세계가 역사적인 인플레이션에서 디스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으로 돌아가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다가(디스인플레이션) 결국 물가가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물가 흐름의 결정적인 변수인 잠재성장률이 팬데믹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소비자물가지수(CPI) 변동률 추이(전년대비 %) /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이 낮아진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최신 보고서에서 장기 기대 인플레이션에 일어난 변화를 감지했다. 중앙은행들의 정책대응이 전보다 나아졌기 때문에 단기적인 충격에 물가가 요동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낮아져 끝내 정상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는 것이다.

PIIE는 보고서에서 "이런 기대는 실제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는 데 거의 확실히 도움이 됐다"며 지난 1년간 물가상승률이 치솟았지만, 기대 인플레이션 수준은 10년 전보다 크게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는 최근 몇 주 새 채권시장에 반영된 기대 인플레이션도 하락했다고 거들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역시 최근 트위터를 통해 미국의 중기 기대 인플레이션이 하락한 사실에 주목했다.


◇얼마나 더 높아지겠어?..'기저효과'도

인플레이션의 지속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는 기저효과도 있다. 연간 물가상승률이 최근 크게 오른 건 팬데믹 사태로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와 비교한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팬데믹 사태는 세계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었다. 수요가 냉각되면서 물가 수준이 낮아졌던 만큼 인플레이션 압력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같은 효과는 앞으로 나올 물가지표에도 반영되기 마련이다. 다만 최근 물가 수준이 크게 높아진 만큼 1년 뒤 물가상승세는 반대로 완만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수입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최근 폭등한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면 인플레이션의 둔화가 더 두드러질 수 있다.

프리얀카 키쇼어 옥스퍼드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원자재 가격이 후퇴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역사적인 기준으로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겠지만, 계속 오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식품과 에너지 가격이 내년 중반께 전년대비 10~15% 떨어지며 전체 인플레이션 하락에 일조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신회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