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금리 얼마나 오를까..."저금리는 영원히" 기대하는 이유
통화긴축 공세에 '이지머니' 시대 종언 우려 "고령화 과잉저축 중립금리 낮출 것" 전망도
'이지머니'(easy money) 시대가 마침내 끝나는 걸까. 이지머니는 중앙은행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공급한 초저금리 자금, 말 그대로 '쉬운 돈'이다.
이지머니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물론 올해로 3년차를 맞은 팬데믹 사태에서도 세계 경제와 글로벌 금융시장의 회복을 뒷받침했다. 각국 정부는 저금리로 국채를 발행해 재정부양에 나설 수 있었고, 금융시장으로 흘러든 저금리 자금은 자산가격을 띄어 올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주요 중앙은행들이 통화긴축 행보를 보이기 시작하자 저금리 시대 종언 가능성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 바람에 글로벌 증시를 반영하는 MSCI전세계지수는 1월에만 5%가량 추락했다. 글로벌 채권시장도 직격탄을 맞아 국채금리가 치솟고 있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지난해 말 1.5% 수준이던 게 최근 1.9%를 돌파했다.
◇"4월까지 글로벌 GDP 절반 국가들이 금리인상"
6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는 최신 보고서에서 오는 4월이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나라들이 정책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12개 신흥국과 주요국 가운데는 유일하게 영국이 금리인상에 나섰지만, 이들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불과하다. JP모건은 금리인상이 잇따르면 올해 말에는 글로벌 정책금리가 평균 2%로 팬데믹 사태 이전 수준에 거의 근접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블룸버그는 이 추세라면 1990년대 이후 가장 강도 높은 통화긴축이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은행들은 정책금리 인상에 더해 양적완화(자산매입)로 쌓인 자산을 축소하는 양적긴축(QT)에도 나설 태세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주요 7개국(G7) 중앙은행들의 장부상 자산이 올해 중반이면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 하반기에는 양적긴축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양적완화는 장기국채 등 시중 자산을 매입해 돈을 푸는 경기부양책이다. 제로(0) 수준인 기준금리를 더 낮출 수 없는 상황에서 장기금리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한 고육책이다. 양적긴축은 차입금리 기준이 되는 장기금리의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
중앙은행들이 이지머니 시대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건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미국의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7%(전년동기대비)로 198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1월치(10일 발표 예정)는 7.3%로 더 높아질 전망이다. 유로존 물가상승률은 1월 5.1%로 전월에 이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글로벌 물가상승률도 6%나 된다.
◇통화긴축 쌍방 리스크...인플레 가속 vs 경기침체
블룸버그는 중앙은행들이 통화긴축으로 경기를 얼마간 냉각시키려는 건 연착륙(소프트랜딩)을 위한 것이지만, 양방향의 리스크(위험)가 존재한다고 짚었다.
우선 인플레이션 압력이 계속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JP모건은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도 강한 경기회복세가 지속돼 실업률이 낮아지고, 서비스 수요가 커지면 그럴 수 있다고 봤다.
한 예로 미국 노동부가 지난 4일 발표한 1월 고용지표는 예상치를 크게 웃돌며 오미크론 변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JP모건은 중앙은행들의 제한적인 긴축 조치와 저인플레이션은 양립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다른 유력 이코노미스트와 투자자들도 중앙은행들의 인플레이션 대응이 이미 한발 늦었다며 보다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금리인상 속도와 강도를 높일 수는 없는 일이다. 인플레이션이 언제 잦아들지 모르는 상황에서 과도한 통화긴축은 경기를 급랭시킬 수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5일자 최신호에서 중앙은행들이 경기침체를 일으키지 않고 인플레이션을 길들인 사례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5%가 넘는 인플레이션을 경기침체 없이 낮춘 마지막 사례가 70년도 더 지난 일이라고 설명했다.
◇저축과잉이 중립금리 압박...저금리 지속 기대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에 맞서 금리를 얼마나 올릴 수 있을까. 시장에서는 연준이 올해 최소 5회, 유럽중앙은행(ECB)은 두 차례의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올해 기준금리를 7번 올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올해 남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때마다 줄인상을 예상한 것이다.
0.25%포인트씩 인상하면 현재 0~0.25%인 미국의 기준금리가 연말이면 1.75~2.0%가 된다. 연준이 2024년까지 예상한 금리 수준(2.1%)에 거의 도달하는 셈이다. 연준이 '중립금리'로 보는 2.5%와도 별로 멀지 않다.
중립금리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 경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궁극적인 금리 수준을 말한다. 자연금리, 균형금리라고도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에 당장 대응하려면 금리를 급격히 인상해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춰야 하겠지만, 저금리 시대가 영원히 끝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G7 국가들의 정책금리는 1990년대 모두 5%를 넘었지만, 지난 10년간은 2.5%를 웃돈 적이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중립금리가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전 세계적으로 저축이 늘었지만, 기업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투자를 꺼리게 된 탓이라고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첨단기술 경쟁이 치열해지고, 기후변화 대응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2020년대에는 2010년대보다 투자를 늘릴 것으로 봤다.
다만 고령화 탓에 저축열은 오히려 더 뜨거워질 것으로 봤다. 기대수명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은퇴 이후의 삶을 위한 저축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인구 가운데 50세 넘는 인구 비율은 현재 25%에서 2100년이면 40%로 늘어날 전망이다.
◇'잃어버린 30년' 장기불황 '일본화' 우려도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글로벌 저축과잉'(GSG·global savings glut)이 수요를 제한해 만성적인 성장 정체를 일으킬 수 있다고 봤다. 일본식 장기불황이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를 집어삼킬 수 있다는 경고였다.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하는 일본식 장기불황의 세계화 전조 가운데 대표적인 게 저금리와 고부채다. 이코노미스트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355%에 이른다며, 기업과 가계가 미미한 금리인상에도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초저금리 기조에 기대어 막대를 부채를 쌓아올린 만큼 강도가 어떻든 금리인상의 충격이 클 것이라는 얘기다.
1980년대 역대 최대 호황을 누린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초 자산거품 붕괴로 무너져 아직도 취약한 상태다.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2015년 4월 이후 줄곧 당국의 안정 목표치인 2%를 밑돌고 있다.
일본은행(BOJ)은 1991년 6%였던 기준금리를 1999년 12월 0% 낮추며 제로금리 시대를 맞았다. 급기야 2016년에는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해 지금껏 유지하고 있지만, 금리인상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