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파월은 볼커 근처에도 못 가"...94살 '닥터둠'의 경고
1970년대 '대인플레이션', 볼커 당시 연준 의장 대응 겪은 카우프만 "파월의 연준은 '스태미나' 없어"...단호하고 과감한 금리인상 촉구
"파월은 볼커가 아니다. 근처에도 못 간다."
1970년대 미국 월가에서 '닥터둠'(Dr. Doom)으로 불린 헨리 카우프만 헨리카우프만&컴퍼니 대표의 말이다. 14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카우프만은 이 통신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인플레이션에 대응할 준비가 전혀 안 됐다며 불신을 드러냈다.
◇파월 불신 '닥터둠' 카우프만은 누구?
올해 94세인 카우프만은 1970년대 당시 미국 5대 투자은행 가운데 하나였던 살로몬브라더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냈다. 비관적인 전망과 정부 정책에 대한 날선 비판으로 '닥터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70년대 미국이 겪은 '대인플레이션'(Great Inflation)과 1982년 금리하락과 채권가격 상승을 정확히 예측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예상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역사적인 랠리에 불을 댕겼다. 1979년 8월 연준 의장에 취임하며 인플레이션 소방수로 나선 폴 볼커의 공격적인 금리인상 정책을 지지하기도 했다.
1979년 8월 6일 취임한 볼커는 토요일이었던 그해 10월 6일 기준금리를 11%에서 12%로 기습 인상했다. 이른바 '토요일 밤의 대학살'(Saturday Night Massacre)이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이듬해 20%까지 올랐다. 1970년대 대인플레이션과 볼커의 대응을 두루 경험한 만큼 카우프만으로서는 최근의 인플레이션과 파월 의장의 대응을 놓고 할 말이 많을 법하다.
더욱이 그는 '하이퍼인플레이션'(초인플레이션) 속에 파국을 맞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독일 출신이다.
◇단호해야 하는데...'스태미나' 없는 파월
카우프만은 '닥터둠'답게 쏘아 붙였다. 그는 "이 연준과 이 리더십은 단호하게 행동할 스태미나(체력)가 없는 것 같다"며 "그들은 점진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시장을 인플레이션 우려에서 돌아서게 하려면 시장에 충격을 줘야 한다며, 금리를 조금씩 높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파월은 최근 재임을 위한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통화정책을 정상으로 되돌리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했다. 통화부양책을 거둬들이는 게 고용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줘선 안 된다고도 했다. 통화긴축 공세 수위를 마냥 높일 수 없다는 얘기다. 실업률 급등을 야기하고, 급기야 더블딥(이중침체)까지 촉발한 볼커 시대의 통화긴축과 비교된다. 볼커의 긴축 공세는 멕시코를 디폴트(채무불이행)로 몰아넣고 중남미 채무위기를 촉발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럼에도 카우프만은 고삐 풀린 인플레이션을 길들이려면 보다 적극적인 통화긴축 선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979년 볼커 당시 연준 의장의 통화공급 제한 결정은 단기금리 급등을 초래했다. 덕분에 1980년 3월 연간 14.8%에 달했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983년 7월 2.5%까지 떨어졌고, 볼커는 영웅으로 부상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20년까지 10년간 연평균 1.7%로 연준 목표치인 2%를 한참 밑돌았지만, 지난해 12월 7.0%로 치솟았다. 1982년 6월 이후 최고치다.
카우프만은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가혹할 정도의(draconian) 통화긴축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기준금리를 당장 0.5%포인트 인상하며 추가 인상 신호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결심을 명문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팬데믹 탓, 일시적"....파월의 2가지 실수
카우프만은 파월 의장이 지난해 인플레이션 진단과 대응 과정에서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고 꼬집었다.
우선 인플레이션의 일부를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의 직간접적인 영향 탓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카우프만은 팬데믹 사태의 영향은 정확히 가늠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실수는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인'(transitory) 현상으로 본 것이다.
카우프만은 "일시적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위험하다"며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는 건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고, 이는 결국 경제안정자로서 연준의 역할을 약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카우프만은 1970년대 연준의 경험에서 취할 교훈이 많다고 보지만, 당시와 지금은 여러 면에서 다른 점도 있다고 짚었다. 경기회복세가 탄탄한 가운데 실업률이 4%를 밑돌고, 증시가 사상 최고점에 가까이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카우프만은 1980년대 초에는 볼커의 정책 대응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세가 너무 가팔라 인플레이션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임금 일시 동결과 가격 통제 같은 조치를 취해야 했지만, 지금은 그럴 정도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시장에서는 다소 완만한 통화긴축 기대
어찌됐든 연준의 통화긴축 행보와 관련한 시장과 이코노미스트들의 기대는 카우프만과 거리가 멀다. 연준이 오는 3월에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카우프만은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도 물가상승률이 3%로 낮아지려면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지만, 블룸버그의 최신 설문조사에 응한 이코노미스트들은 올해 말 물가상승률이 3%를 밑돌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블룸버그는 카우프만의 견해가 눈에 띠는 것은 그가 1970년대 말 월가에서 핵심 역할을 한 몇 안 남은 베테랑으로 여전히 시장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카우프만과 동시대에 활약했던 바이런 윈 블랙스톤 부회장(88)도 최근 쓴 글에서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이 지배적인 테마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 연준이 올해 기준금리를 4번 인상하고,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2.75%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