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글로벌 공급망위기..."팬데믹보다 무서운 기후변화"

더 잦고 심해지는 기상이변 글로벌 공급망 위협 기존 공급망 리스크 파악, 대안 마련 기업들 과제

2022-01-09     김태연 기자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의 한 도로가 초강력 허리케인 '아이다'가 불러온 폭우와 홍수로 물에 잠겨 있다./사진=신화연합뉴스

영국 기후변화 전문 사이트 '카본브리프'(Carbon Brief)에 따르면 2000년대 초부터 2020년까지 전 세계에서 일어난 기상이변은 405건에 달한다. 홍수, 가뭄, 한파, 열파, 폭풍 등 종류도 다양했다. 주목할 건 대개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결과이며, 그동안 일어난 기상이변의 70%는 앞으로 더 빈번해지고 심해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도 세계 곳곳에서 자연재해가 잇따랐다. 연초에는 미국 텍사스가 기록적인 한파를 겪었고, 여름에는 허리케인 '아이다'가 미국 남부를 강타했다. 독일 등 유럽을 집어삼킨 홍수의 위력도 상당했다. 살인적인 폭염, 산불, 홍수가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인명과 막대한 재산을 앗아갔다.

재보험사 스위스리에 따르면 지난해 지진이나 쓰나미, 인재를 제외한 날씨 관련 재해로 인한 보험손실액이 1011억달러(약 122조원)에 이른다.

제이슨 제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경영대학원 '지속가능성이니셔티브' 책임자는 기상이변이 다음 공급망 위기가 아니라 위기들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공급망 위기는 한 번으로 끝날 게 아니라는 얘기다. 전혀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시간에, 예상불가능한 방식으로 기상이변이 일어나 공급망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10일자 최신호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글로벌 공급망을 강타했지만, 기후변화가 공급망에 미칠 충격이 더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기업들이 충분히 대비하지 않고 있다는 게 제이 같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라고 전했다.

1970년 이후 보험손실액(십억달러, 지진·쓰나미-날씨 관련 재해-인재)/자료=스위스리인스티튜트

◇공급망 관리, 리스크 파악하고 '대안' 세워야

팬데믹처럼 기상이변도 갑작스러운 것이어서 대응하기 어렵고, 한 지역에서 일어나면 급격한 연쇄파장이 불가피하다. 

한 예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이상한파로 기온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텍사스주에서는 석유화학업계가 타격을 입어 레진(수지), 플라스틱, 시트르산, 이산화탄소 등의 공급에 제동이 걸렸다. 폭염과 사막 등으로 유명한 텍사스 기업들은 '북극 한파'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보고서 저자인 로버트 핸드필드 교수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날씨 변수가 계속 발생하면 기업들은 공급망을 관리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급망 관리 강화를 위한 첫 단계로 기존 공급망이 기상이변과 관련해 정확히 어떤 리스크(위험)를 안고 있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슬론 경영대학원의 제이 책임자는 공급망은 여러 겹으로 돼 있기 마련인데, 1차 공급처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기업들이 있다고 꼬집었다.

공급망 관리에는 물론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핸드필드 교수는 "공짜로 리스크를 줄일 수는 없다"며 기업들의 공급망 운영 비용 부담이 전반적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각국 정부가 추진하는 기후변화 대응 정책도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키울 전망이다. HSBC홀딩스와 보스턴컬설팅그룹은 지난해 10월 낸 보고서에서 글로벌 공급망이 향후 30년간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0)로 줄이는 '넷제로'(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투자액을 100조달러로 추산했다.

온실가스 배출 저감 노력이 공급망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최근 중국이 석탄 공장을 폐쇄하면서 일어난 에너지난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후변화 곡물수확 30%↓...글로벌 식량난 우려

기상이변에 따른 공급망 혼란에 가장 취약한 부문은 단연 농업이다. 가뭄과 홍수는 브라질 커피 작황과 인도 쌀 농사에 큰 타격을 줬고,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아몬드 나무를 뿌리째 뽑아야 했다.

유엔은 향후 수십년에 걸친 기후변화 영향으로 전 세계 곡물 수확량이 약 30%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 사이 글로벌 식품 수요는 50% 증가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식량난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이상고온은 건설, 조경을 비롯해 실외에서 해야 하는 일을 위험하게 만든다. 냉방설비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이례적인 폭염에 실내에서 일하는 것도 고통일 수 있다. 2019년 6월에는 폭염 속에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일부 기업과 학교가 문을 닫은 바 있다.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최신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 도시 인구가 30도 넘는 더위에 노출된 연간 일수는 1983년~2016년 200% 가까이 늘었다. 

기후 리스크 전문가인 메칼라 크리시난 맥켄지글로벌인스티튜트 파트너는 지난해 팬데믹 사태에서 비롯된 심각한 수준의 공급망 혼란이 올해 일어나지 않을지 몰라도, 기후변화에 따른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계속 쌓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