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 리뷰&전망]"내년에도 '롤러코스터'"...암호화폐시장 전망 어떻길래
세계경제, 국제금융시장 올해 이슈와 새해 전망③/ 비트코인 가격 붕괴, 규제 강화 우려...비트코인 현물 ETF, 디파이 기대감도
"비트코인이 2021년 주류가 됐지만, 변동성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블룸버그가 지난 21일 비트코인의 한 해를 되집은 특집기사에 붙인 제목이다. 개인은 물론 기관투자가들이 암호화폐시장에 가세하면서 비트코인이 주류로 부상했지만, 악명 높은 가격 변동성은 전과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분석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올해 19번이나 표준편차를 넘어 급등락했다. 비트코인 투자가 본격화한 2017년은 23회, 2018년 21회, 2019년은 19회였고, 지난해는 오히려 10회에 그쳤다.
물론 변동성이 크다는 건 가격이 급락은 물론, 급등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비트코인 가격은 올해 70% 넘게 올라 주요 자산 가운데 최상위 성적을 냈다. 갖은 논란과 변동성에 대한 우려에도 암호화폐시장에 투자가 몰리고 있는 이유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26일 현재 글로벌 암호화폐시장 시가총액은 약 2조3532억달러에 이른다. 8000억달러를 밑돌았던 지난해 말보다 4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 암호화폐시장에서는 가격이 급등락하는 가운데 각국의 규제 강화 움직임을 둘러싼 우려도 컸지만, 호재도 잇따랐다.
지난 4월에는 미국 최대 암호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가 나스닥시장에 데뷔하며 축포를 쏘아 올렸다. 주요 암호화폐거래소로서 첫 기업공개(IPO)가 대박을 터뜨리자 시장에서는 "암호화폐산업을 정당화하는 분수령"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뱅크오브뉴욕(BNY)멜론, 마스터카드, 비자카드 등 금융대기업들의 암호화폐시장 진출도 줄을 이었다. JP모건은 대형 기관투자가들의 암호화폐 베팅에 가격 변동성이 '정상화'하고 있다며, 고무적인 신호라고 평가했다.
이밖에 지난 10월에는 미국의 첫 비트코인 선물 상장지수펀드(ETF)가 뉴욕증시에 데뷔했고, 중미 국가인 엘살바도르는 9월에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해 암호화폐시장을 고무시켰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는 최근 전문가들의 암호화폐시장 전망이 밝지 않다고 전했다. 올해 성과가 있지만, 최근 두드러진 규제 압박과 고조된 변동성이 내년 전망을 흐리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암호화폐시장이 새해에도 '롤러코스터'를 탈 공산이 크다고 보는 분위기다.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는 주요 예상들을 짚어본다.
◇가격 붕괴...2018년 '악몽' 재현?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가격이 몇 개월 새 붕괴 수준으로 폭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달 한때 6만9000달러 턱밑에서 사상 최고점을 찍었지만, 최근 5만달러 선에서 등락을 거듭했다. 고점대비 30%가량 떨어진 셈이다. 보통 자산가격이 전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하면 약세장에 들어선 것으로 본다.
캐롤 알렉산더 영국 서식스대 교수는 비트코인 가격이 내년에 1만달러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1년 반 동안의 상승분을 모두 반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내가 투자자라면 비트코인에서 빠져나올 것"이라며 "비트코인 가격이 내년에 붕괴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트코인은 근본적인 가치가 없으며, 투자가 아닌 장난감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게 이유다.
알렉산더는 비트코인이 내년에 2018년 악몽을 재현할 수 있다고 봤다. 비트코인은 2017년 1400% 폭등하며 2만달러 선에 근접했지만, 이듬해 3000달러 근처까지 곤두박질쳤다.
암호화폐 지지자들은 '이번엔 다르다'고 맞선다. 기관투자가들이 대거 합류하고 있는 암호화폐시장은 더 이상 투기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토드 로웬스타인 유니언뱅크 프라이빗뱅킹 부문 수석 주식 투자전략가는 비트코인 가격 차트가 다른 자산들의 자산거품·붕괴 궤적을 따르고 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다른 자산거품 때도 '이번엔 다르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비트코인을 인플레이션 헤지(위험회피) 수단으로 삼으려는 이들이 많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 추세를 흔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준이 예고한 대로 통화긴축 속도를 높이면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면 헤지 수요가 쪼그라들 수 있다.
암호화폐 지지자들도 할 말은 있다. 일본 디지털자산 거래소인 비트뱅크의 하세가와 유예 암호화폐시장 애널리스트는 암호화폐시장 최대 리스크인 연준의 통화긴축은 이미 결정됐고, 가격에도 반영됐다"고 강조했다.
◇비트코인 선물 이어 현물 ETF도?
암호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내년에 미국에서 첫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비트코인 현물을 직접 거래하는 ETF가 탄생하면 투자지평을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올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승인 아래 뉴욕증시에 데뷔한 비트코인 선물 ETF는 말 그대로 현물이 아닌 선물을 거래하기 때문에 초보 투자자들이 감당하기엔 리스크와 수수료 부담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 많다.
암호화폐 거래소 루노(Luno)의 비제이 아이야 부사장은 "비트코인 선물 ETF는 수수료가 5~10%에 달해 개인투자자들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비트코인 현물 ETF가 내년에 승인 받을 가능성이 큰 건 비트코인시장이 충분히 규모를 키우고 성숙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SEC의 승인을 기다리는 비트코인 현물 ETF는 한둘이 아니다. 미국 암호화폐 투자회사 그레이스케일인베스트먼츠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세계 최대 비트코인 펀드인 기존 비트코인 신탁 상품을 비트코인 현물 ETF로 전환하기 위해 SEC에 신청서를 넣은 상태다.
물론 승인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SEC는 지난달 미국 자산운용사 반에크(VanEck)가 승인을 신청한 비트코인 현물 ETF에 퇴짜를 놨다. 해당 상품이 조작이나 사기 등으로부터 자유로운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비트코인 지고 '디파이' 뜬다
최근 암호화폐시장에서 주목받는 큰 흐름 가운데 하나는 비트코인의 장악력이 부쩍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글로벌 암호화폐시장 시총에서 비트코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약 40%로 가장 높지만, 연초 70%에 비하면 크게 떨어진 것이다. 그 사이 이더리움이 점유율을 약 21%로 연초대비 두 배나 높였다. 연초 1%를 밑돌던 바이낸스코인은 점유율을 4% 이상으로 끌어올려 3대 암호화폐로 등극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본다. 투자자들이 이익을 극대화하길 바라며 소규모 암호화폐군에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식스대의 알렉산더 교수는 특히 내년에 주목해야 할 코인으로 이더리움, 솔라나, 폴카닷(polkadot), 카르다노(cardano)를 꼽았다. 그러면서 그는 "개인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데 따른 위험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탈중앙화 금융(decentralized finance·de-fi) 안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블록체인에 속한 다른 코인으로 갈아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알렉산더는 이런 움직임 속에 내년 이맘 때면 비트코인 시총이 이더리움과 솔라나 등 '스마트 콘트랙트(smart contract)' 기반 코인 시총의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 것으로 예상했다.
'스마트 콘트랙트'는 블록체인 안에서 거래 조건을 만족시키면 당사자간 거래가 자동으로 체결되는 걸 말한다. 법원이나 변호사 같은 중앙기관이나 제3자를 통하지 않고, 네트워크상의 코드로 계약내용을 강제적으로 보장받는 식이다. 아무도 끼어들지 않는 금융, 이른바 '디파이'(de-fi)와 같은 맥락이다.
암호화폐 플랫폼 ICHI의 브라이언 그로스 네트워크 관리자는 암호화폐시장에서 성장 잠재력이 가장 큰 분야로 디파이를 꼽았다. 이 부문에 투입된 자금이 올해 처음으로 2000억달러를 넘었는데, 내년에는 투자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스테이블·디파이도 논란...규제 '변곡점'
암호화폐시장은 올해 각국 규제당국으로부터 전에 없는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중국은 암호화폐 관련 활동을 전면 금지했고, 미국에서는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이 청문회에서 드러내놓고 암호화폐에 강력한 규제 의지를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내년이 암호화폐 규제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본다. 루노의 아이야 부사장은 암호화폐의 법적 회색지대가 적극적인 규제 압력 속에 점점 맑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암호화폐 규제가 본격화하면서 '되고 안 되고'가 보다 뚜렷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예로 미국 블록체인 회사 리플(Ripple)은 관련 암호화폐인 XRP를 놓고 SEC와 다투고 있다. SEC는 리플과 이 회사 임원 2명이 불법적으로 미등록 유가증권인 XRP 13억달러어치나 팔았다는 입장이다. 리플은 XRP는 가상화폐이기 때문에 투자계약으로 등록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을 둘러싼 규제 논란도 예상된다.
스테이블코인은 그 가치가 달러를 비롯한 화폐나 금 같은 기존 자산 가격에 따라 움직인다. 스테이블코인 간판 격인 테더(Tether)는 '1테더=1달러'로 설계됐다.
스테이블코인은 이름대로 다른 암호화폐보다 가격 움직임이 안정적(stable)일 수 있지만, 달러나 금 가격에 연동될 만큼 해당 자산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지를 둘러싼 의문이 규제 압력을 높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스테이블코인에 '사기' 혐의를 제기할 정도다.
디파이 부문도 규제 사정권에 들어왔다.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국제결제은행(BIS)은 실체와 다르게 '탈중앙화'를 마케팅에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며, 디파이 부문에 대한 규제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