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MC 체크포인트]통화긴축 가속?...신중론도 살펴야 하는 이유
美연준 테이퍼링·금리인상 가속 전망 뒤집을 수 있는 변수들
미국의 물가상승세가 점점 더 가팔라지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당초 예고한 것보다 서둘러 통화긴축 기조로 돌아설 것이라는 관측이 번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오는 14~15일 올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이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할 공산이 크다고 본다. 양적완화(자산매입) 규모를 줄이는 테이퍼링 속도를 높여 금리인상 시기도 앞당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앞서 연준은 지난달 FOMC 회의에서 월간 150억달러 규모의 테이퍼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속도대로라면 내년 6월이면 월간 1200억달러 규모인 양적완화가 모두 끝난다. 당시 시장에서는 연준이 내년 6월 테이퍼링을 끝내는 동시에 팬데믹 사태 이후 첫 금리인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美연준 통화긴축 가속론 배경은?
투자자들의 생각이 바뀌는 데는 지난달 말 제롬 파월 의장의 의회 청문회 발언이 결정타 역할을 했다. 그는 당시 "자산매입을 몇 개월 빨리 끝내는 것을 검토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이달 FOMC에서 관련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파월은 "보다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며 "지난 몇 개월 새 물가상승이 더 광범위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연준 일부 인사들이 제기해온 통화긴축 가속론에 파월이 힘을 싣자, 시장에서는 연준이 내년 1월부터 테이퍼링 규모를 월간 300억달러로 높여 같은 해 3월 양적완화를 끝낼 수 있다는 관측이 세를 불렸다. 연준이 테이퍼링 규모를 키우는 건 조기 금리인상 신호로 읽히기 쉽다. 내년 3월 금리인상설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내년 3월 이전에라도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연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했을 때도 이번처럼 제로(0)금리와 양적완화로 대응했다. 연준이 통화긴축 기조로 돌아선 건 2013년 12월. 이때부터 시작한 테이퍼링은 이듬해 10월에야 마쳤다. 첫 기준금리 인상은 1년여 후인 2015년 12월에 단행했다. 테이퍼링부터 첫 금리인상까지 2년이 걸린 셈이다.
이에 비하면 시장에서 예상하는 이번 통화긴축은 그야말로 속도전이다. 통화긴축에 따른 금융시장 동요, 이른바 '긴축발작'(taper tantrum)에 대한 우려가 전보다 약해진 가운데, 물가상승세가 예상보다 급격하고 오래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당장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전년동기대비 6.8%로 39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미국 투자정보분석업체인 CFRA리서치의 샘 스토벌 수석 투자전략가는 2013~2014년 연준의 테이퍼링 예고와 실행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발작' 같은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S&P500지수는 당시 테이퍼링 기간에 실제로는 11.5% 뛰었다고 지적했다.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2013년 5월 처음 테이퍼링 가능성을 시사한 이후 한 달 동안 5.8% 떨어진 뒤 반등했다는 설명이다.
◇통화긴축 발목 잡을 수 있는 변수도
연준의 통화긴축 행보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이지만, 정반대 행보를 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머잖아 약해지기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가 신중론을 뒷받침한다.
국제유가 흐름이 한 근거다. 국제유가는 지난 10월을 정점을 찍은 뒤 한동안 하락했다.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10월 말 배럴당 86달러를 웃돌았다가 하락세로 돌아서 최근 한때 70달러를 밑돌았다. 이 영향은 당장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반영되고, 몇 개월 뒤에는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에도 나타날 전망이다.
또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급등하기 시작한 게 지난해 3월인 만큼 내년 3월 이후에는 물가상승세(전년동기대비)가 약해지기 쉽다. 시장에서 테이퍼링 종료, 금리인상 개시 시기로 꼽는 내년 봄에 통화긴축 핵심 촉매인 고인플레이션이 진정될 수 있다는 얘기다.
코로나19 신종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 등의 여파로 미국 경제 성장세가 내년에 약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최근 같은 이유로 내년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낮춰 잡았다. 미국의 성장둔화 또한 연준의 통화긴축 속도를 늦추기 쉬운 요인이다.
연준에 대한 조기 금리인상 기대가 어긋나면 시장에는 상당한 파장이 불가피하다. 증시는 탄력을 받겠지만, 장기금리는 하락하고 달러는 약세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금리인상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
기우치 다카히데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NRI)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3일 NRI 블로그에 쓴 칼럼에서 시장에서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가 빨라질 기대가 더 높아질 여지는 크지 않다고 봤다. 그러면서 그는 시장에서 현재 연준이 내년 중반부터 2024년 말까지 총 1.50%포인트의 금리인상을 예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0.25%포인트씩 모두 6차례의 금리인상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우치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이 극히 완만한 금리인상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시장에서는 물가 급등세가 예상외로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도 연준이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릴 것이라는 기대는 없는 셈이라는 설명이다.
기우치는 시장의 이런 판단 배경에는 물가급등세가 실제로는 지속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성장세가 둔화할 수 있다는 우려, 연준의 금리인상은 본격적인 수요 억제가 아니라 당분간 시중의 인플레이션 우려를 진정시키기 위한 메시지성이라는 판단 등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또 연준이 공급망 문제가 물가급등세의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있는 만큼 통화긴축으로 대응하는 건 무리라고 이해하고 있을 것으로 봤다. 또 금리를 너무 빨리 올린 뒤 물가상승세가 진정되면 결과적으로 실질금리만 급등해 경기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결국 연준은 금리인상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례로 미국이 요즘 상황에 자주 비견되는 '대인플레이션'(Great Inflation)과 불황 속에 물가가 급등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겪고 있던 1979년 8월 연준 의장 자리에 오른 폴 볼커는 급격한 금리인상에 나서 미국 경제를 '더블딥'(이중침체)에 빠뜨렸다. 폴커가 취임했을 때 10.5%였던 기준금리는 이듬해 3월 20.0%까지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