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메타버스 '부캐'도 性·인종 차별?...'크립토펑크'에 비친 현실

크립토펑크 캐릭터 가격에 현실세계 차별·편견 반영 "블록체인 세계 주류 구성, 투자지향성 반영" 반론도

2021-12-12     김태연 기자
크립토펑크 캐릭터/사진=라바랩스 웹사이트

인터넷 세상에는 또 다른 내가 존재한다. 흔히 말하는 '부캐'(부캐릭터)다. 지금까지는 '아이디'(ID)가 대표적이었다. 문자나 숫자 따위의 조합이거나 특정 단어, 이름인 경우가 많은 아이디는 인터넷에서 사용자의 이름을 대신한다. 아이디는 본인 캐릭터나 가치관 등을 반영하기도 한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훨씬 더 구체적인 수단으로 제 정체성을 드러낸다.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 계정에 본인 사진이 아닌 특정 이미지를 붙이거나 인터넷 3차원(3D) 가상세계인 메타버스에는 자신의 분신 캐릭터, '아바타'를 투입한다.

이미지 캐릭터로는 블록체인회사 라바랩스(Larva Labs)의 '크립토펑크'(CryptoPunks)가 대표적이다. 라바랩스는 2017년 이 프로젝트를 통해 1만개의 얼굴 이미지 파일을 공개했다.

픽셀(화소)이 드러날 정도로 엉성한 얼굴 이미지 파일들은 암호화폐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NFT'(Non fungible Token·대체불가능 토큰)다. 블록체인 기술로 고유성과 소유권을 인정받는 디지털자산이다.

라바랩스는 2만개의 복셀(3D 화소) 캐릭터를 선보이기도 했다. 역시 이더리움 블록체인 기반 NFT 프로젝트인 '미빗츠'(Meebits)를 통해서다. 미빗츠 캐릭터는 레고 캐릭터를 3D로 구현한 듯해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기술로 현실세계와 연결된 메타버스에서 아바타로 쓰기에 안성맞춤이다.

◇크립토펑크 캐릭터도 성·인종 차별?...'남성·백인'이 가격 높아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13일자 최신호에서 크립토펑크 얼굴 이미지 가격 흐름에 주목했다. 특정 캐릭터들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남성과 백인이 여성과 유색인종 캐릭터보다 비싼 게 보통이라는 것이다. 메타버스에서도 인종과 성별,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미국 월가의 대표적인 암호화폐 지지자인 마이크 노보그라츠도 인종에 대한 현실세계의 편견이 메타버스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데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11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흑인 펑크(크립토펑크)들이 백인 펑크보다 싼 가격에 거래된다는 사실에 신경이 쓰인다"며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지만, 나는 메타버스가 (현실보다) 나은 곳이길 바란다"고 썼다. 

노보그라츠가 이끄는 암호화폐 투자회사 갤럭시디지털홀딩스는 이에 앞서 며칠 전에 검은 피부를 가진 남성 크립토펑크를 구입했다.   

크립토펑크 얼굴 이미지 1만개 가운데 남성은 6039개, 여성은 3840개로 처음부터 차이가 크다. 12일 현재 매매할 수 있는 캐릭터도 남성이 901개로 여성 552개를 압도한다. 이밖에 성별 구분이 불필요한 외계인 캐릭터가 9개, 유인원 24개, 좀비 88개 등이다.

NFT정보분석업체인 디젠데이터(DeGenData)에 따르면 NFT시장이 주류에서 각광받기 시작한 지난 8월 이후 남성 크립토펑크는 2124개 팔렸는데, 최저가격 중간값이 99이더리움(약 40만달러·4억7000만원)이었다. 이에 비해 여성 캐릭터는 같은 기간 95이더리움에 1165개가 거래됐다.

피부색에 따른 차이도 뚜렷했다. 지난 8월 이후 매매된 크립토펑크 캐릭터의 주간 평균 최저가격은 피부색이 밝을 수록 높았다. 이 기준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가격 차이가 그대로 반영됐다.

미빗츠 3D 캐릭터/사진=라바랩스 웹사이트

미빗츠 캐릭터의 거래 가격 추이도 비슷했다고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지적했다.  미빗츠 캐릭터들 가운데는 흑인을 비롯해 피부색이 짙은 캐릭터들이 가장 낮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캐릭터 개발에 신경을 썼다는 존 왓킨슨 라바랩스 공동 창업자는 "크립토펑크에서 인종과 성별에 따라 나타난 가격 차이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다만 "불행히도 시장이 완전히 탈중앙화했기 때문에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단이 없다"고 덧붙였다.

◇블록체인시장 주류가 남성·백인...희귀 캐릭터도 인기

크립토펑크, 미빗츠 캐릭터들 사이에서 드러난 가격 차이가 꼭 편견이나 인종주의에 기반한 현실세계의 차별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 초기 단계인 블록체인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게 백인, 남성이라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본인을 닮은 캐릭터를 선호하다보니 백인, 남성 캐릭터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회사 프로피(Propy)를 설립한 여성 투자자인 나탈리아 카라야네바는 여성 크립토펑크 캐릭터가 남성 캐릭터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건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 투자할 여유가 있는 여성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크립토펑크 투자자들은 캐릭터의 독특성과 고유성, 희소성을 중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계인, 유인원, 좀비 같은 캐릭터들이 일반 인물 캐릭터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이유다. 

크립토펑크에 따르면 12일 현재 가장 높은 가격에 매매된 캐릭터는 외계인 가운데 하나인 '크립토펑크 3100'으로 지난 3월 4200이더리움(약 758만달러·90억원)에 팔렸다. 외계인과 유인원, 좀비 캐릭터들이 거래액 상위 10위권을 휩쓸었다.

캐릭터에 반영된 의상이나 액세서리 같은 특징도 가격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후드티, 3D·VR 안경, 왕관, 정장모자, 비니 등을 착용한 캐릭터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받고 있다고 한다. 

크립토펑크 투자자들 사이에서 최고 가치 캐릭터로 꼽히는 '크립토펑크 8348'/사진=라바랩스 웹사이트

1만개의 크립토펑크 캐릭터 가운데 가장 높은 가치 평가를 받고 있는 캐릭터는 담배, 귀걸이, 사마귀, 뻐드렁니, 정장모자, 전형적인 선글라스, 큰 턱수염 등 가장 많은 7개의 특징을 가진 남성 캐릭터(크립토펑크 8348)가 꼽힌다.

이런 과장된 캐릭터는 메타버스에서 현실세계 정체성과 전혀 다른 '부캐'로 창의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자아내며 몸값을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