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달러 강세 지속 기대할 수 없는 이유

2021-12-10     김신회 기자
사진=픽사베이

달러 강세가 한창이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올 들어 7% 가까이 올랐다. 미국의 26개 주요 무역상대국 통화를 기준으로 한 달러인덱스도 지난 6월부터 오름세가 돋보인다.

달러 강세는 미국 경제 회복세에 대한 기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긴축 움직임,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들 요인은 달러 강세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다.

신흥시장에 달러 강세는 경계해야 할 흐름이다. 달러 강세가 글로벌 자금의 유출을 자극하고, 달러 부채 상환 부담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이를 막으려면 각국 중앙은행들이 통화긴축을 통해 현지 통화 가치를 뒷받침해야 하는데, 통화긴축은 미약한 경기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1일자 최신호에서 달러 강세 행진을 저지할 재료를 당장은 찾기 어렵지만, 내년에는 달러 강세 기조가 역전될 가능성이 생각보다 클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달러인덱스 추이/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뛰는 달러 뒤엔 '미국 예외주의'

이코노미스트는 달러 강세 배경부터 짚었다. '미국 예외주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증시 간판지수인 S&P500이 다른 나라 증시 대표지수들을 압도하는 상승세를 뽐내고 있고, 미국 경제도 상대적으로 강력한 회복세로 팬데믹 충격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 결과 미국은 다루기 힘들 정도로 높은 인플레이션 위협에 직면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자산매입(양적완화) 종료 시점을 앞당길 수 있음을 시사했을 정도다. 조기 금리인상 여지를 만들어 놓은 셈이다. 

반면 중국은 성장둔화로 고전하고 있고, 유럽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봉쇄 조치로 경제활동이 다시 크게 위축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오미크론 변이는 경제적 역풍을 부채질할 전망이다.

그나마 주요 통화 가운데는 중국 위안화가 달러 강세 흐름을 따라 잡고 있다. 위안화 강세는 중국에서 빠져 나오는 자금보다 중국으로 유입되는 자금이 더 많은 데 따른 것이다.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거둬들이고 있고, 글로벌 투자자들은 여전히 중국 주식·채권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 정부가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취한 여행금지 조치로 중국인들의 해외소비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위안/달러 환율 추이(달러당 위안)/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그럼에도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는 약세로 기울 공산이 커 보인다. 중국 통화당국이 최근 에버그란데(헝다)그룹 사태로 드러난 부동산 부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통화정책을 완화 기조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 6일 올 들어 두 번째 지급준비율(지준율) 인하를 단행한 게 대표적이다.

지준율은 시중 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맡겨야 하는 예금액의 비율이다. 이를 낮추는 만큼 은행들의 대출 여력이 커진다. 이코노미스트는 지준율 인하 조치가 중국 당국이 위안화 약세를 선호한다는 걸 암시하는 신호일 수 있다고 풀이했다.

◇달러 약세 전환을 위한 세 가지 조건

이코노미스트는 여러 사정을 종합해보면, 달러 강세 주장은 빈틈이 없어 보이지만 상황은 유동적이라고 지적했다. 적어도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달러가 앞으로 몇 개월 안에 강세의 정점에 도달한 뒤 약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

①성장격차 축소

우선 미국과 다른 나라들의 성장세 격차가 줄어야 하는데, 이코노미스트는 결국 그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봤다. 그러면서 아시아지역의 경우, 경제 부진을 너무 중국의 성장둔화 탓으로 돌릴 뿐 팬데믹 사태의 지체효과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팬데믹 사태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경기회복세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유럽에 대해서는 경제가 아직 완전히 재개되지 않았지만, 유럽연합(EU)이 경기부양기금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는 게 호재로 꼽혔다. 미국이 세계 경제 회복세를 주도하겠지만, 다른 나라들과의 격차는 축소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②인플레이션 감속

달러 강세 흐름을 역전시키는 데 필요한 두 번째 조건은 인플레이션 수위가 낮아지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역시 낙관적으로 봤다. 국제유가가 이미 하락세를 탔고, 공급망 병목현상도 누그러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만과 베트남 등 글로벌 제조 거점에서는 최근 제품 인도 시기가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만수르 모히우딘 싱가포르 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 수준이 낮아지면 연준의 매파(강경파) 성향이 약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③연준 매파성향 약화

모히우딘이 지적한 게 바로 세 번째 조건이다. 연준 내부에서 매파들의 통화긴축 가속론이 힘을 잃으면 달러 강세 압력도 낮아질 수 있다.

연준은 물가안정과 최대고용이라는 '이중책무'를 갖고 있다. 최근 고공행진하고 있는 물가상승 압력이 약해지면 물가안정보다 최대고용 목표 달성에 더 집중할 여유가 생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통화긴축 고삐를 과도하게 조여선 안 된다.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봄이나 초여름께 시장이 연준의 금리인상 전망이 과도했음을 깨닫게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변동률 추이(전년동기대비)/자료=FRED

◇ECB 등 다른 중앙은행 움직임도 변수

다른 중앙은행들의 움직임도 주목해야 할 변수다. 한 예로 유로존의 경기회복세가 짙어지면 유럽중앙은행(ECB)의 매파 성향이 강해질 수 있다. ECB의 금리인상 신호는 유로화 강세 요인으로 달러 강세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스티븐 잉글랜더 스탠다드차타드 주요 10개 통화 외환리서치 글로벌 책임자는 미국의 고인플레이션을 근거로 삼고 있는 달러 강세론에 대해 인플레이션은 통화 가치를 떠받칠 좋은 이유가 못 된다고 꼬집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당장은 연준의 통화긴축을 자극해 달러 강세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중장기적으로 지속되면 달러에도 좋을 게 없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본질적으로 화폐 가치 하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