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디지털자산 판치지만...21세기 최고 자산은 '부동산'

주요 10개국 순자산 3분의 2 부동산에 쏠려...富-성장 단절 역풍

2021-11-15     김신회 기자
사진=AP연합뉴스

주요국이 치솟는 부동산 가격을 잡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부동산 문제가 사회불안 요인으로 급부상하면서다. 독일 2위 노조 베르디(Ver.di)의 프랑크 베르네케 위원장은 부동산 가격, 특히 집세를 과거 폭동과 혁명의 빌미가 된 빵값에 빚댔을 정도다.

사회불안을 극도로 경계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최근 공동부유론을 주창하며, 주거 안정에 큰 방점을 찍었다. 그는 집은 사는 곳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부동산 문제는 한국 대선판도 뒤흔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인 라나 포루하는 14일(현지시간) 쓴 글에서 주요 선진국의 부동산 가격 급등세와 관련해 흥미로운 연구 자료(The Rise and Rise of the Global Balance Sheet)를 소개했다. 주요국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쏠려 있다는 게 맥킨지글로벌인스티튜트가 낸 이 보고서의 핵심이다. 

맥킨지는 호주 캐나다 중국 프랑스 독일 일본 멕시코 스웨덴 영국 미국 등 전 세계 소득의 60%를 차지하는 10개국의 대차대조표를 분석했다. 10개국의 가계, 정부, 은행, 비금융 기업의 실물자산, 금융자산, 부채를 따져보니 순자산의 3분의 2가 주거·상업용, 정부 소유 부동산에 들어 있었다.

포루하는 블록체인, 암호화폐, 빅데이터 등을 통한 자산의 디지털화가 한창이지만, 21세기 부의 대부분이 결국 가장 오래된 자산인 부동산에 몰려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CED) 주택가격 추이(2015년=100 기준)/자료=OECD

◇부동산에 쏠린 자산...富-성장 단절

맥킨지에 따르면 10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순자산과 5년 이동평균 장기 명목금리는 뚜렷한 역의 상관관계를 나타냈다. 자산, 특히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데 금리 하락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토지 공급 제한, 구역·용도 제한, 부동산시장에 대한 과도한 규제 등도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결과, 10개국의 집값은 지난 20년 새 평균 3배 올랐다.    

이 결과, 소득 대비 자산 가치가 장기 평균치보다 50% 가까이 높아졌다. 보통 경제가 성장하면 순자산도 함께 늘기 마련인데,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탓에 부와 성장이 별개가 된 셈이다. 부를 쌓을 기회가 없었던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집을 사는 건 하늘의 별 따기일 수밖에 없다.

이런 불균형은 결국 경제의 핵심인 소비가 성장하는 데 역풍을 일으킨다. 당장 집이 없으니 집에 필요한 물건을 살 이유가 없다. 집을 사지 못한 이들이 늘어나면 집세가 치솟아 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 불황 속에 물가가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한 이유다.

◇자산가격 상승이 순자산 늘려...저축·투자 부진 

부와 성장의 단절은 너무 많은 돈이 부동산에 쏠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 성장에 필요한 곳에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10개국의 순자산은 2000년 150조달러에서 2020년 500조달러로 늘었다. 자산 가격 상승이 이 가운데 3분의 2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경제 성장에 필요한 저축과 투자는 28%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사회기반시설, 산업장비, 기계, 무형자산 등에 대한 투자가 생산성과 혁신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저축과 투자가 부진한 건 안타까운 일이다. 중국과 일본을 제외하고 비부동산 자산이 전체 실물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년 새 더 낮아졌다. 같은 기간 디지털 상거래와 정보 흐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무형자산은 순자산의 4%에 불과하다.

◇"저렴한 주택 공급 방안 고민해야"  

포루하는 맥킨지의 보고서를 통해 우리가 새겨야 할 교훈 세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저금리는 기업 투자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경기부양을 위한 중앙은행들의 초저금리 정책이 부동산을 비롯한 투기자산의 가격만 띄어 올렸지, 투자를 자극하는 데 실패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반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각국 정부의 대규모 재정지출 프로그램은 궁극적으로 부와 성장의 균형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포루하는 평가했다. 경제 성장에 필요한 보다 생산적인 부문에 자금을 투입하는 데는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이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포루하는 마지막으로 지금 경제적으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는 첨단 이동수단과 보다 유연해진 노동환경 덕분에 부동산 가격 상승 압력을 어느 정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사례를 들어 도시 구역 재설정을 통해 주거지 밀도를 높이는 방안을 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퇴직자들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시세차익과 소득을 함께 고려해 과세하는 식의 세제 대응도 필요하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