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물가에 임금까지 '인플레 악순환'..."해법은 노동력 공급"

2021-10-17     김신회 기자
사진=AFP연합뉴스

주요 선진국에서 물가와 임금이 동반 상승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다.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주요국의 물가상승률은 중앙은행 목표치(대개 2%)를 밑돌기 일쑤였고, 임금상승률도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팬데믹 사태 이후 경기회복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지난달까지 1년간 4.6% 올랐다. 그 사이 소비자물가는 5.4% 뛰었다. 독일에서는 물가상승률이 4.1%에 이르는 동안 임금이 5% 올랐다. 과도한 임금상승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물가·임금 동반상승

물가상승세가 가팔라진 이유는 자명해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침체됐던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수요가 급증했지만, 공급망은 곳곳에서 병목현상을 빚으며 수요를 따라 잡지 못하고 있다. 공급난에 에너지 가격도 고공행진 중이다.

반면 임금이 급격히 오르고 있는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주요국의 고용사정은 팬데믹 사태 이전보다 결코 좋아지지 않았다. 일자리는 많지만 인력은 부족하다. 바이러스 확산 공포가 여전한 가운데 정부의 재정지원이 가계 소득을 떠받쳐 주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팬데믹을 계기로 일보다 가정, 여가를 우선시하게 된 이들도 적지 않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6일자 최신호에서 세계 경제가 물가와 임금이 동시에 가파르게 오르는 소용돌이로 들어서고 있는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난감해진 중앙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이유야 어찌됐든, 급격한 임금상승세가 중앙은행들을 곤욕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위협은 일시적이라고 주장해왔는데, 과도한 임금 상승세가 인플레이션 압력을 놓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생활비 부담 우려가 커지면 임금상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쉽다. 임금이 오르면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지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전제 아래 통화정책을 구상해왔는데,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적으로 더 거세지면 통화긴축에 더 속도를 내야 할 수 있다. 자칫 취약한 세계 경제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빨강), 시간당 임금 변동추이(2021년 1월=100 기준)/자료=FRED

◇임금상승 압력 낮추려면

이코노미스트는 임금상승 압력에 따른 인플레이션 지속을 피하려면, 세 가지의 조합이 필요하다고 봤다. ①기업들이 임금상승 부담을 가격인상이 아니라 이윤을 줄이는 식으로 흡수해야 하고 ②생산성을 실질 임금 수준에 걸맞게 높여야 하며 ③놀고 있는 이들을 노동시장으로 복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세 가지 모두 쉬운 과제는 아니다. 우선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노동자가 임금으로 받는 몫, 이른바 노동분배율은 주요 선진국에서 이미 매우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한다. 팬데믹 사태 이후에만 평균 1%포인트가량 높아진 결과다. 전체 경제 파이에서 기업 이윤을 희생하면서 노동자의 몫을 늘릴 여지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나마 생산성을 높일 여지는 상대적으로 커 보인다. 팬데믹 사태로 원격근무가 확산하는 등 디지털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1인당 생산성이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다만 이같은 변화를 실시간으로 평가해 정책에 반영하기는 어렵다.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의 정책 결정이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약 18개월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노동력 공급이 관건

이코노미스트는 정책당국이 결국 가장 집중해야 할 건 노동력 공급이라고 강조했다. 놀고 있는 이들을 노동시장으로 복귀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임금상승 압력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2월과 지난 9월의 노동참가율(각각 63.3%, 61.6%)을 근거로 미국에서 팬데믹 사태 이후 일자리로 복귀하지 않은 인력이 430만명에 이른다고 거들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실업자에 대한 재정지원책이 끝나도 구직 인구가 늘어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며, 은행계좌가 바닥나고 팬데믹 사태가 누그러지면 내년에 일자리를 구하려는 유휴인력이 나타나 임금상승세를 둔화시킬 것으로 봤다.

그러면서 지금같은 시기에는 통화정책당국이 평소보다 더 노동시장에 주목해야 한다며 정부보다 중앙은행의 역할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