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법인세개혁]디지털세, 최저세율 15%...'탄소국경세'까지?

2021-10-09     김신회 기자
사진=AFP연합뉴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비롯한 전 세계 136개국(지역)이 8일(현지시간) 글로벌 법인세 개혁에 최종 합의했다. 이에 따라 오는 2023년부터 법인세 최저 세율(15%)과 '디지털세'가 도입된다. 

일정 기준이 넘는 다국적 대기업들은 생산, 판매 등을 위한 물리적 거점을 두지 않아도 서비스 이용자가 있는 곳에서는 '디지털세'를 내야 한다. 기술 대기업들이 전 세계에서 막대한 이익을 올리면서 걸맞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불만이 디지털세 도입의 발단이 됐다.

이번 합의는 1980년대 이후 지속된 법인세 인하 경쟁에 종지부를 찍는 한편 물리적 거점을 전제로 한 국제 과세 원칙을 약 100년 만에 돌려 세우는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요약하자면, 돈 번 곳에 마땅한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게 디지털세 합의의 골자다.

OECD, 주요 20개국(G20) 포괄적 이행체계(IF)가 이날 주도적으로 최종 합의문과 시행계획을 논의했고, 협상에 참가한 140개국 중 136개국이 지지했다. 케냐,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스리랑카는 반대했지만, 아일랜드와 헝가리 등 저항이 컸던 저세율 국가들이 막판에 힘을 실었다.

머티어스 코먼 OECD 사무총장은 "(이번 합의로) 국제 조세 협정을 더 공정하고 더 잘 작동하게 될 것"이라며 "다자주의에 있어 큰 승리"라고 평가했다. 특히 디지털세 합의는 기후변화 위기를 막기 위한 국제공조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는 지적이다.   

◇"돈 번 곳에 세금"...年150조원에 '디지털세'

디지털세 도입으로 세무당국은 자국에 물리적인 거점을 두지 않더라도 현지 서비스 이용자를 통해 돈을 버는 다국적 기업에 법인세를 부과할 수 있게 됐다. 

디지털세 합의 배경에는 이른바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미국 기술 대기업(빅테크)들이 막대한 이익을 내면서도 세금을 제대로 내고 있지 않다는 불만이 있었다. 다만 디지털세가 기술 대기업만 대상으로 삼는 건 아니다.

매출 200억유로(약 27조6564억원) 이상인 다국적기업 가운데 세전 이익률이 10%를 넘으면 대상이 된다. 매출의 10%를 넘는 '초과이익' 25%에 과세할 권리를 해당 기업 서비스나 상품 이용자가 있는 국가, 지역에 매출 등 기준에 따라 배분하는 구조다. 

연간 약 1250억달러(약 150조원)의 이익에 대한 과세 권리가 공정하게 분배되는 셈이다.

다국적기업 약 100곳이 디지털세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중국 기업이 각각 43%, 14%로 큰 비중을 차지할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애플, 페이스북, 알파벳(구글 모회사), 제약사인 머크와 화이자 등이 유력하다. 

이익률이 낮은 인터넷쇼핑몰이 주력인 아마존은 최근 연결 결산 이익률이 10%를 밑돌지만, 단일사업(클라우드)에서 매출·수익 조건을 만족하면 과세할 있는 예외조항에 해당한다. 

중국에서는 텐센트 등 10개가, 한국에서는 삼성전자, 하이닉스가 대상이 될 공산이 크다.

각국은 오는 2022년에 디지털세에 대한 국제조약을 마련하고, 미국 기술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과세제도는 폐지하기로 했다. 앞으로도 디지털 분야에 독자적인 과세를 하지 않는다는 합의가 문서에 명기됐다. 이에 따라 GAFA가 참여하는 미국 정보기술산업협의회 (ITI)도 이번 합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1980년대부터 하향 경쟁이 본격화한 글로벌 법인세율이 20~25%로 수렴하고 있다./자료=미국 세금재단

◇최저법인세율 '15%'...'바닥 경쟁' 끝

디지털세와 함께 논의해온 법인세 최저 세율은 15%로 정했다. 지난 7월 합의한 '15% 이상'을 '15%'로 못박았다.

매출 7억5000만유로(약 1조371억원) 이상인 기업이 최저 법인세율 적용 대상이 된다. 세율이 낮은 국가나 지역에 거점을 두고 세부담을 피하는 것을 막는 게 목표다. 

애플을 비롯한 다국적 기업들의 거점인 아일랜드의 법인세율 12.5%에 불과하다. 최저 법인세율이 도입되면 아일랜드 같은 조세회피처에 대한 법인 이전 매력이 떨어진다.

OECD는 법인세 최저 세율 도입으로 전 세계에서 연간 1500억달러(약 179조4000억원)의 세수 증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국제사회가 최저 법인세율 도입에 공감대를 모은 건 1980년대부터 본격화한 법인세율 인하 경쟁, 이른바 '바닥을 향한 경주'에 세율이 더 낮은 곳을 향한 기업들의 법인 이전이 잇따르는 등 역효과가 컸고,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당장 경기부양을 위한 재원 확충이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세금재단(Tax Foundation)에 따르면 세계 법정 법인세율은 1980년 평균 40.11%에서 지난해 23.85%로 떨어졌다. 해가 갈수록 20~25% 수준에 수렴하고 있는 모습이다. OECD 회원국 평균 법정 법인세율은 현재 21.5%다. 한국의 법인세율은 25%다. 

최저 법인세율 합의에는 세금우대 등 혜택으로 제조업을 유치해온 신흥국을 배려하는 내용도 담겼다. 우선 제도 이행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렸다. 공장 등 유형자산과 직원에게 지불하는 급여의 5%를 과세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는데, 이행기간에는 유형자산과 급여의 공제비율을 각각 8%, 10%로 높인 뒤 단계적으로 낮추기로 했다. 

동남아시아 등지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 일부는 세금우대 혜택 등으로 실제 부담하는 법인세율이 15%에 못 미치는 경우가 있다. 최저 법인세율에 맞춰 추가 세 부담이 생길 수 있는데, 현지에 공장이 있거나 현지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면 증세 부담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이행기간 연장, 과세대상 예외 인정 등이 어떻게든 세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기업들이 악용할 수 있는 허점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2023년 새 제도 시행을 위한 136개국(지역)의 국내 절차가 원만하게 이뤄질지도 두고봐야 한다. 

◇'글로벌 탄소국경세' 합의도 가능할까 

이번 합의는 한동안 무기력했던 국제공조체제의 부활 가능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안 그래도 국제사회는 협력을 통해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를 떠안고 있다. 가장 시급하고 대표적인 문제가 기후위기다.

OECD의 코먼 총장은 최근 미국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와 한 회견에서 디지털세 합의 성공모델을 탄소배출권 규제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충분히 야심찬 다자 합의 없이는 '글로벌 넷제로'에 도달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넷제로(net zero)는 온실가스인 탄소의 순배출량을 제로(0)로 줄이는 것을 말한다. 탄소중립이라고도 한다. 전 세계 190여개국이 2015년 기후변화 위기를 막기 위해 채택한 파리협정은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해 산업혁명 이후 2100년까지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한다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넷제로를 달성하려면 전 세계가 배출한 만큼의 탄소를 다시 흡수해야 한다. 탄소 배출량을 상쇄하려면 나무를 심거나, 화석연료 발전소를 대체할 친환경에너지 시설에 투자하거나, 탄소배출권시장을 통해 자발적 감축실적을 초과한 배출분에 대한 비용을 물어야 한다. 

유럽연합(EU)은 지난 7월 2030년까지 역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기 위한 정책 패키지, '핏 포 55'(Fit for 55)를 통해 여러 조치를 내놨다.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고,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코먼 총장은 디지털세 합의가 '글로벌 탄소국경세' 도입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얼핏 봐도 과세 논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

탄소국경세의 목표는 이른바 '탄소누출'(carbon leakage)을 막아 공정한 경쟁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탄소누출은 기업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탄소배출 규제가 느슨한 곳으로 거점을 옮기는 걸 말한다. 기업들이 조세회피처로 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탄소누출을 통해 만든 저가제품은 EU 역내에서 환경비용을 부담하며 같은 제품을 생산한 기업에 피해를 주기 쉽다. 

EU의 탄소국경세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근간으로 한다. EU 회원국들이 수입하는 제품 가운데 역내 제품보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제품에 세금을 물리도록 했다.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기 등 5개 품목을 우선 대상으로 삼아 2023년부터 단계적으로 CBAM를 도입해 2026년부터 본격 운용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