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연준 통화긴축 시간표 빨라진다"...경제학자들 견해는?
학계 경제학자들 FT 설문조사서 "연준, 내년에 금리인상"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내년에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게 학계 유력 경제학자들의 전망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0일 보도했다.
신문은 학계에서 예상하는 연준의 통화긴축 시간표가 연준의 당초 전망보다 빨라졌다고 지적했다.
FT와 미국 시카고대 경영전문대학원 IGM(Initiative on Global Markets) 연구소가 지난 3~8일 공동으로 벌인 경제학자 설문조사(49명 가운데 47명이 답함) 결과에 따르면, 연준이 내년에 최소 0.25%포인트 이상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답한 이가 70%를 넘었다. 이 가운데 20% 가까이는 내년 상반기에 기준금리 인상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연준이 예고한 시간표는 이보다 훨씬 더디다. 연준은 지난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2023년 말에 최소 두 차례의 기준금리 인상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연준은 지난해 팬데믹 사태에 맞서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낮췄다.
설문에 응한 경제학자들은 연준이 내년에 기준금리 인상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곧 양적완화(자산매입) 규모를 줄이는 테이퍼링에 나설 것으로 봤다. 내년까지 양적완화를 완전 중단해야 기준금리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준은 물가상승률이 평균 2% 수준에 이르고, 최대 고용을 달성하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룰 때까지 월간 1200억달러 규모인 양적완화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잭슨홀 미팅에서 적어도 인플레이션 측면에서는 이미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며, 최대 고용 측면에도 진전이 있다고 평가했다. 테이퍼링을 위한 전제조건을 어느 정도 충족했다는 의미다.
경제학자들도 연준의 테이퍼링을 시간문제로 봤다. 40% 이상이 11월에, 31%는 12월에 연준의 테이퍼링 공식 발표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오는 21~22일 FOMC에서 테이퍼링 발표를 기대한 이는 소수에 그친 셈이다.
오히려 전체의 4분의 1가량은 코로나19 재확산과 이에 따른 고용지표 부진이 테이퍼링 발표를 내년으로 미루게 할 수 있다고 봤다.
◇흔들리는 '평균물가목표제'
FT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가 연준 내 매파들의 입장과 맞닿아 있다고 지적했다. 통화긴축을 지지하는 이들은 소비자물가 앙등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고 있다.
설문조사에 응한 스티븐 세체티 미국 브랜다이스대 교수는 "2022년에는 충분히 강한 임금 상승세를 가진 강력한 노동시장이 생길 것"이라며 장기간 2%를 넘는 물가상승률을 꺼리는 우려도 상당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은 지난해 9월 이른바 '평균물가목표제'를 도입했다. 물가상승률이 일시적으로 정책 목표치인 2%에 도달해도, 한동안 2%를 완만하게 웃도는 수준이 될 때까지 제로금리 기조를 고수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세체티의 말은 내년에 노동시장 여건이 충분히 좋아지면 굳이 2%가 넘는 물가상승률을 용인할 필요가 없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안 그래도 연준 내부에서는 이미 인플레이션을 문제 삼는 매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지난 7월 5.4%로, 전월과 같은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준이 물가지표로 가장 선호하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은 같은 달 3.6%였다.
매파로 유명한 로버트 캐플란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전날 한 온라인 행사 연설에서 최근 경제지표는 테이퍼링을 이달 발표하고 다음달 시작하는 게 적절하다는 걸 시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시장 회복 기다리기보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경제학자들은 경기회복세로 봇물터진 수요에 따른 공급난을 최대 위험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이들이 올해 말 PCE 물가지수 상승률 전망치를 지난 6월 3%(중간값 기준)에서 3.7%로 높여 잡은 이유다.
응답자의 70% 가까이는 근원 PCE 물가지수 상승률이 내년 말까지 연준 목표치인 2%를 웃돌 것으로 봤다.
이들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수준이 연준으로 하여금 노동시장의 완전한 회복을 기다리기 전에 금리인상에 먼저 나서게 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자들이 예상한 미국의 실업률은 올해 말 4.9%(8월 현재 5.2%)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적어도 오는 2023년까지 팬데믹 사태 이전 수준인 3.5%로 복귀하기 어렵다고 본 이가 43%나 됐다. 23%는 2024년 이후는 돼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니 블랜치플라워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는 연준의 섣부른 금리인상이 거시경제적 실수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동시장 여건이 빠르게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 아래 너무 성급하게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긴축발작, 파월 거취는?
전보다 잦아들긴 했지만, 2013년 연준의 테이퍼링 신호로 불거진 '긴축발작'(taper tantrum)의 재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당시 연준의 조기 통화긴축 신호는 글로벌 금융시장, 특히 취약한 신흥국 금융시장에 직격탄을 날렸다.
멘지 친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교수는 연준의 통화긴축 움직임에도 금융시장이 상대적으로 잠잠한 건 연준이 시장과 잘 소통해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연준이 내년 상반기에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같은 해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 2월 임기가 끝나는 파월 의장의 거취도 연준의 통화긴축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응답자 가운데 80% 이상은 파월이 두 번째 임기를 맞을 것으로 봤지만, 18%는 라엘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가 바통을 이을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