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VR로 보는 트레이딩의 미래

2021-08-09     김태연 기자

미국 인플레이션에 대한 D6VR 데이터 시각화 데모영상/동영상=D6VR 유튜브 계정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처음 컴퓨터를 도입한 게 1966년 12월의 일이다. 이후 증권사들이 따라 나서 1970년대 중반께는 컴퓨터가 각 지점뿐 아니라 증권사와 거래소를 직접 연결했다.

1980년대에는 월가에서 컴퓨터는 흔한 게 됐고, 1990년대 인터넷혁명을 거치며 월가의 디지털화 속도는 더 빨라졌다. 심지어 최근에는 최첨단 통신기술에 기대 빛의 속도와 경쟁하는 초단타매매(high-frequency trading)가 미국 증시 거래량의 절반가량을 소화하고 있을 정도다.

8일(현지시간)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에 따르면 최근에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술이 트레이딩 세계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VR은 컴퓨터가 만든 가상의 세계에서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 기술이다. AR은 현실세계에 3차원 가상 이미지를 겹쳐서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준다. 이를 트레이딩에 반영하면 전문 트레이더는 물론 개인투자자도 공간 제약 없이 보다 다양한 자료를 보기 좋게 가공한 상태로 참고해 투자에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CNBC는 VR, AR을 통한 트레이딩이 아직 큰 사업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D6VR 화면/사진=D6VR 웹사이트

한 예로 지난달 미국 나스닥시장에 진출한 글림스그룹(Glimpse Group)은 원격의료, 엔터테인먼트, 교육 등 8개 분야의 VR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 가운데 하나가 주식거래 VR 사업을 하는 'D6VR'이다. 

이 회사 설립자인 앤디 마지오는 CNBC에 "VR이 우리 생에 가장 큰 변화를 줄 기술"이라고 자신했다.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 출신인 그는 VR 기술이 아직 전성기를 맞은 건 아니지만, 기술이 급격히 좋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화면의 해상도가 5년 전보다 두 배 높아졌고, 하드웨어(헤드셋)는 더 가볍고 사용하기 쉬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D6VR은 헤드셋을 통해 3차원 차트 도구와 함께 스크린을 18개까지 보여준다. 트레이더는 이를 보고 보다 빨리, 더 강력한 통찰력을 갖고 투자에 나설 수 있다고 회사는 강조했다. 고객이나 회사를 설득할 때는 인상적인 프레젠테이션이 가능하다고도 했다.

몇몇 금융회사들이 D6VR의 기술을 경험했지만, 이를 도입하겠다고 나선 곳은 아직 없다고 한다. 라이론 벤토빔 글림스그룹 최고경영자(CEO)는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인 그는 "월가는 적응에 더디지만, 이게 바로 트레이딩의 미래"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한 트레이더가 여러 개의 스크린 아래 앉아 있다./사진=로이터연합뉴스

벤토빔은 D6VR의 기술이 무엇보다 트레이더들을 공간의 제약에서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레이더들이 보통 책상에 6~8개의 모니터를 두고 보는데, D6VR 기술은 10여개의 스크린과 층층이 쌓인 데이터를 보고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D6VR과 경쟁하는 영국 플렉스트레이드(FlexTrade)의 앤디 마호가니 이사도 "트레이더들은 책상에 충분한 '부동산'이 없다"고 거들었다. 그러면서 "키보드와 스크린, 마우스보다 우리가 더 낫다"고 말했다. 플렉스트레이드는 2017년 한 콘퍼런스에서 먼저 트레이더용 VR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브레넌 맥터넌 D6VR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데이터를 여러 차원으로 시각화할 수 있다는 걸 D6VR의 진짜 강점으로 꼽았다. 물론 플렉스트레이드를 비롯한 다른 경쟁사들의 기술도 마찬가지다. 

맥터넌은 금융업계에서 VR의 가치가 점점 더 높아질 것으로 봤다. 우선 트레이더들이 물리적 공간에서 벗어나 맞춤형 데이터와 보고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데이터를 3차원으로 보고, 크기와 색상을 조절할 수 있으며 여러 층으로 겹치게 할 수 있다는 점도 활용 가치가 클 것으로 봤다. 자산관리를 받는 고객들에게도 다차원 데이터가 잘 통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벤토빔은 트레이딩 세계에 큰 변화가 머지않았다며 "책상에 컴퓨터 한 대 없던 시절도 있었지만, 흐름은 정말 빨리 바뀌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