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스크(하)]中노림수는 데이터통제...'회색지대' 우려도
중국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조짐이 포착된 건 지난해 11월이다. 중국 당국이 알리바바의 핀테크 자회사 앤트그룹의 기업공개(IPO)를 막아섰다. 앤트그룹이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했다.
이달에는 차량공유업체 디디추싱이 표적이 됐다. 미국 뉴욕증시 IPO를 통해 44억달러(약 5조원)를 조달한 직후다. 중국 당국은 사이버 국가안보, 반독점 조사로 디디추싱을 몰아세웠다.
최근에는 뉴오리엔탈에듀케이션&테크놀로지, TAL에듀케이션 등 사교육업체들이 화살을 맞았다. 당국은 사교육업체들의 영리추구, IPO 등을 금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0일 중국의 민영기업 단속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라고 전했다. 중국 컨설팅업체 트리비움의 켄드라 섀퍼 기술 애널리스트는 "우리는 고객들에게 향후 2~3년간 극도의 불확실성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데이터 통제 노림수
중국 당국이 앤트그룹과 디디추싱 등을 압박하는 데 쓴 카드는 2017년 시행한 '사이버보안법'이다. 이 법은 이른바 '핵심정보기반시설'(critical information infrastructure·CII)을 다루는 모든 기업에 대한 심사, 규제의 명분이 된다. 중국 국가안보나 국민생활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중국 기업은 물론 중국과 거래하는 외국기업을 단속할 수 있다.
오는 9월에는 '데이터보안법'도 시행된다. 중국 당국은 이를 근거로 기업 등이 보유한 국내 데이터를 해외로 옮길 수 있을지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중국은 '개인정보보호법' 제정도 추진 중이다. 빠르면 내년에 선보이게 될 이 법은 중국 디지털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줄 전망이다.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는 약 10억8000만명에 이르고, 인터넷 사이트는 443만개, 앱은 345만개에 달한다. 인터넷을 통해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만큼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홍콩 금융서비스업체 게이브칼드래고노믹스의 에르난 쿠이 중국 소비자 부문 애널리스트는 중국이 일련의 입법으로 규제 강화에 나선 배경엔 정부와 민간의 데이터 통제권 싸움이 있다고 짚었다.
◇외국기업도 사정권
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이 '데이터'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최근 사교육업체들을 궁지로 몰았듯, 기술기업들만 노리고 있는 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섀퍼는 중국 정부가 규제 강화 대상이 될 CII 운영자로 특정 기업을 지목해 공개할지는 불투명하다고 봤다. 그는 "기업들도 아직 모른다"며 중국 사이버 감독기구인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이 최근 디디추싱을 문제 삼으면서 디디추싱이 CII 운영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CAC는 국경 간 데이터 이동에 대해 외국 정부 당국이 요구하는 정보라면 뭐든지 중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밝혔다. 섀퍼는 "기술기업뿐 아니라, 중국 밖으로 뭐라도 보내는 모든 기업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컨설팅업체 컨트롤리스크의 앤드류 길홈 중국 분석 책임자는 중국에서 통신네트워크 같은 CII를 운용하는 외국기업은 없지만, 많은 외국기업들이 난처해질 수 있는 건 이들이 중국 기업에 관련 서비스와 장비를 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 기업들은 외국 파트너가 누군지 추궁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기업이 CII 운영자로 당국의 단속 표적이 되면, 관계된 외국기업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전방위 규제 다음 표적은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천천히 업종과 지역별로 데이터 통제 고삐를 죌 것으로 본다.
중국 장쑤성의 한 제약업체는 미국에 있는 연구소에 자료를 보내는 것과 관련해 이미 CAC의 불시조사를 받게 됐다고 한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임원들이 규제 강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국에 있는) 연구소를 중국으로 이전하는 게 낫다고 제안했다"고 귀띔했다.
컨설팅업체인 인핸스인터내셔널의 샘 래드원 대표는 대규모 데이터를 수집하는 보험, 헬스케어업계도 감독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들도 본사로 정보를 보내야 하는 만큼 중국 당국과 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컨트롤리스크의 길홈은 "중국 충칭에 새 지하철을 놓기 위해 현지 대기업과 계약한 일본 기업이라면, 이 프로젝트와 관련한 정보를 일부라도 본사로 보내야 할 것"이라며 "이게 바로 기업들이 우려하는 회색지대"라고 말했다. 사업상 필요한 정보 이전은 정상적인 절차지만, 중국이 문제 삼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