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반도체 어쩌라고...대만 '8중고'
물·전력·부품·일손 부족, 코로나19 확산 등 악재 첩첩
"지금 대만은 단비를 마냥 기다리는 벼랑 끝 상황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6일 전 세계 반도체 공급원인 대만 기업들이 가뭄에 따른 물 부족 등 '8중고'에 직면해 있다며 이렇게 보도했다. 신문은 대만의 8중고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을 더 불안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만은 전 세계 반도체 공급 물량의 60%를 책임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가 꼽은 대만의 8중고는 ①물 부족 ②전력 부족 ③코로나19 확산 ④백신 부족 ⑤부품 부족 ⑥일손 부족 ⑦컨테이너 부족 ⑧해외거점 코로나19 피해 등이다.
이 가운데 가장 심각한 건 56년 만의 가뭄에 따른 물 부족 사태다. 반도체 공정에는 대량의 물이 필요해서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대만 TSMC는 현지 공장에서 하루 20만t에 달하는 물을 쓴다. 경기용 50m짜리 수영장 80개분쯤 되는 셈이다.
대만은 지난해 여름부터 가뭄에 시달렸다. 대만 당국은 지난 19일 비가 계속 오지 않으면 6월 1일부터 북부 신주시 일대의 절수비율을 현행 15%에서 17%로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신주시는 TSMC 본사와 주력공장 있고, 또 다른 반도체업체인 미디어텍 등이 거점을 두고 있는 대만 반도체산업 집적지다.
TSMC가 역시 주력공장을 둔 중부 타이중시도 상황이 좋지 않다. 현지 최대 댐의 저수율이 1%밖에 안 된다고 한다. 대만 당국은 이 지역에도 신주시와 비슷한 수준의 취수제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이달 중순부터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대만에서는 최근까지 국내 감염자가 드물었지만, 최근에는 수일째 하루 수백명의 감염자가 확인되고 있다. 상황이 이런 데도 대만의 백신 접종률은 현재 1%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인구 2360만명에 대해 확보한 백신은 70만회에 불과하다.
바이러스 확산으로 대만 전역이 사실상 '록다운'(봉쇄) 상태가 된 가운데 전력 부족 사태도 불거졌다. 연일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가정의 전력 소비가 급증한 탓이다. 지난 13일과 17일 대만 전역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일어났을 정도로 대만의 전력 인프라는 취약한 상태다.
대만 전력 당국이 전날 발표한 예비전력은 8.06%에 그쳤다. 대만 전략사업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대만전력의 주력 화력발전소 가운데 4기가 정기정검 중인 게 화를 키웠다.
니혼게이자이는 물 부족으로 수력 발전도 제한된 상황이라며, 전체 전력의 80%를 화력에 의존하고 있는 대만에서 대규모 정전 사태의 재발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우려했다.
반도체산업은 물뿐 아니라 전력도 많이 쓴다. 모든 공정이 공기 청정도를 높인 '클린룸'(clean room)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전력 공급이 끊기면 모든 공정을 중단해야 할 수밖에 없다.
니혼게이자이는 대만이 반도체 수요 급증에 대응해 관련 설비를 대거 늘렸지만, 전력 인프라는 이를 따르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반도체 공급을 늘리기엔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TSMC는 연내 사상 최대인 9000명을 채용할 예정이지만,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급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네덜란드 ASML 등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업체들도 올해 대만에서 수백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컨테이너 부족과 운송 가격 상승세도 가파르다. 컨테이너 하나에 여러 화주의 화물을 함께 담아 보내는 LCL 운송 비용은 최근 유럽이나 미주까지 1만달러를 돌파, 전년대비 4~8배 올랐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전했다. 컨테이너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배송 지연 사태도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대만 기업들의 해외거점도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부품 부족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