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플레인]뉴욕증시 상장 바람...IPO vs 스팩 vs 직상장
미국 뉴욕증시가 새 식구를 맞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추락한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이라는 오명을 쓴 미국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 동남아 최대 차량공유업체 그랩,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글로벌 등이 데뷔를 앞두고 있다.
주목할 건 이들의 시장 진입 방식이 전과 다르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기업공개(IPO·initial public offering)가 일반적이었지만, 위워크와 그랩은 '스팩'(특수목적인수회사·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과의 합병, 코인베이스는 '직상장'(direct listing)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도 대세는 IPO
IPO는 말 그대로 기업을 최초로 시장에 공개하는 것이다. 비상장기업들이 전통적으로, 또한 여전히 가장 선호하는 상장 방식이다. 지난해 말 뉴욕증시에서는 미국 최대 음식 배달업체 도어대시,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업체 'C3.ai',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 등이 IPO를 실시해 랠리의 열기를 더했다. 도어대시는 거래 첫날 주가가 공모가 대비 90% 가까이 올랐고, C3.ai와 에어비앤비는 각각 2배 훌쩍 넘게 뛰는 기염을 토했다.
시장에서는 공짜 주식 거래 앱 로빈후드가 IPO 열풍을 이어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미국 증시에서 '개미 투자' 열풍을 일으킨 로빈후드는 지난달 비밀리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IPO 신청서를 냈다. 월가에서는 2분기 중에 상장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IPO는 비상장기업이 신주를 발행해 공개적으로 모은(공모) 불특정다수의 투자자들에게 팔아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투자자들이 주식을 살 수 있도록 기업이 주식과 경영 내역을 시장에 공개한다고 해서 기업공개라고 한다.
기업들이 증시 상장 방식으로 IPO를 선호해온 건 그만의 장점이 많아서다. 우선 IPO는 대형은행을 주관사로 끼고 하기 때문에 공모가격 등과 관련해 유리한 조건 아래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기 쉽다. 또 엄격한 상장심사 과정에서는 재무·경영자료 등을 제출해야 해 심사를 통과한 경우 기업에 대한 신뢰와 평판을 높일 수 있다.
잠재적인 투자자들은 기업이 제공한 자료를 근거로 투자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주주들의 충성도도 높은 편이다.
다만 당국의 심사를 통과하는 데 적잖은 시간이 들고, 대형은행에 대한 수수료와 투자자 유치를 위한 기업설명회, 이른바 '로드쇼' 등을 치르는 데 따른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스팩 합병을 통한 우회상장
스팩은 비상장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인수회사를 말한다.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게 목적이다. 생산이나 서비스 제공 등의 활동을 하지 않고 IPO로 조달한 자금이 전부인 회사다. '껍데기 회사'(shell company), '백지수표 회사'(blank check company)라고 불리는 이유다.
스팩은 IPO로 자금을 조달해 보통 2년 안에 비상장 기업을 인수한다. 인수 표적을 찾는 데 실패하면, 투자자들은 선택에 따라 IPO 공모가 기준으로 투자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스팩이 인기를 모으는 건 비상장 기업들의 우회상장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괴짜 경영자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 이끄는 우주관광기업 버진갤러틱, 미국 스포츠 베팅업체 드래프트킹스, '제2의 테슬라'로 주목받았던 미국 수소자동차업체 니콜라모터, 미국 온라인 주택중개업체 오픈도어 등이 모두 스팩과 합병하는 방식으로 증시에 데뷔했다.
기업들이 스팩을 상장 수단으로 선택하는 이유는 우회상장이기 때문에 IPO보다 규제 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전기차, 암호화폐 등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분야의 신생기업들이 스팩을 통한 상장을 선호하는 이유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감수해야 할 위험도 만만치 않다. 헤지펀드를 비롯한 유력 기관투자가나 유명인사 등이 참여할 때가 많아 스팩의 IPO가 흥행하기 쉽지만, 일반 투자자들은 인수 표적 등을 잘 알지 못해 '묻지마 투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스팩이 인수 대상으로 삼은 기업들의 경우 스팩 주주들의 반대에 직면할 위험도 크다.
최근 일부 스팩 관련주가 급등세를 뽐냈지만, 수익률이 IPO주보다 훨씬 못하다는 분석도 있다. 르네상스캐피털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IPO를 한 스팩 313개 가운데 다른 기업을 인수해 상장에 성공한 93곳의 주가를 추적한 결과, 평균 수익률이 -9.6%에 불과했다. 중간 수익률은 -29.1%였다. 같은 기간 IPO를 한 기업들의 주가는 평균 37.2% 올랐다.
◇신주발행·공모 없는 '직상장'
코인베이스가 14일 자사 보통주를 나스닥시장에 직상장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주목받게 된 직상장은 투자은행을 끼고 하는 전통적인 IPO와 달리 신주 발행, 공모를 통한 자금조달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기존 보통주를 말그대로 시장에 직접 내놓는 게 직상장이다. 그런 만큼 수수료 등 비용 부담을 덜 수 있고, 장외거래 가격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주가에 대한 통제력을 높일 수 있다.
공모가가 없기 때문에 직상장 공개시장에서 기존 주식의 가격은 상장 당일 거래소에서 주문에 따라 정해진다. 일종의 공모가인 준거가격이 상장 전날 정해질 뿐이다. 따라서 직상장은 장외시장에서 이미 충분한 지지를 받고 있는 기업에 유리하다.
올해 1분기 장외시장에서 코인베이스의 주가는 평균 343.58달러를 기록했다. 나스닥은 13일(현지시간) 코인베이스의 준거가격을 250달러로 제시했는데, 시장에서는 14일 시초가가 1분기 평균 수준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서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직상장을 단행한 음악 스트리밍업체 스포티파이, 메신저앱 슬랙, 빅데이터업체 팔란티어 등의 시초가가 준거가격보다 평균 37% 높은 수준에서 결정됐다는 게 이런 관측의 근거다. 직상장에 성공한 이들 기업은 하나같이 공개시장 진출 전부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최근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투자 열기가 뜨거운 만큼 코인베이스도 예외가 아니다.
대형 유니콘들이 직상장을 택하는 건 IPO를 주관하는 월가 대형은행들에 대한 개인투자자(개미)들의 반감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