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플레인]인플레이션 논란④(끝)… 공급부족 vs 설비과잉
최근 반도체 공급난에 자동차업체들이 줄줄이 공장 문을 닫고 있다.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르기 마련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제동이 걸렸던 수요가 되살아나면서 공급 부족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부쩍 커졌다.
코로나19 사태가 공급망을 직접 파괴하지 않은 만큼,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고 추가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는 주장도 있다.
◇공급부족 어쩌나...흔들리는 '3T'
자동차업계의 반도체 품귀사태는 팬데믹 사태로 지난해 자동차 생산을 줄인 데서 비롯됐다. 반도체업계는 자동차용 반도체 대신 비대면의 일상화로 씀씀이가 커진 PC와 스마트폰용 반도체 생산을 늘렸다. 자동차업계가 다시 생산을 늘리려니 반도체 물량이 부족해진 것이다.
반도체 품귀사태는 경기회복 기대와 함께 전방위로 번지고 있다. 자동차뿐 아니라 PC, TV, 스마트폰, 게임기 등 각종 전자제품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면서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충족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최근 해상운임과 국제유가가 치솟고 있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정부는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한 전략산업의 리쇼어링(국내복귀)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안보를 위해 반도체 같은 미국 기업들의 전략품목 생산거점을 국내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다른 주요국 정부들도 리쇼어링을 경기부양책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전략품목을 보호하고 나서면 관련 제품의 가격이 오르기 쉽다.
블룸버그는 '3T'가 최근 수십년간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은 수준으로 이끌었지만, 트리오의 역할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3T는 △무역(trade)=저렴한 수입품 △기술(tech)=기술적 진보 △타이탄(titan)=임금 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 대기업 등이다.
3T는 최근 불평등의 골을 키워왔다는 비판 아래 정치적 압력에 직면해 있다. 페이스북, 애플을 비롯한 기술 대기업들이 주요국에서 반독점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으며 규제의 표적으로 부상한 게 대표적이다.
◇생산여력 충분...자본도 'OK'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맞선 세계 정부의 대응은 그야말로 '전쟁'에 빚댈 만큼 극적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쟁과 같은 재앙은 인플레이션의 방아쇠를 당기기 일쑤였다. 군사적 충돌이 공장과 철도 등 공급 측면에서 중요한 기반시설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 여파로 공급이 부족해지거나 병목현상을 빚게 되면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기반시설을 잿더미로 만드는 군사충돌과는 달랐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알리시아 가르시아 에레로 아시아태평양 부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팬데믹 사태로 수요가 타격을 입으면서 현재 모두 사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공장이나 철도 같은) 설비를 온전히 남겨뒀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본 또한 파괴되거나 고갈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과잉설비를 메우는 게 훨씬 쉬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팬데믹 사태가 10여년 전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다른 점도 자본과 시스템은 온전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