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다른 별에서도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까?
'자연자본' 배제된 생산함수...자연의 경제 기여도 반영해야
화성이나 금성 같은 다른 행성에서도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까. 경제학 이론인 '생산함수'에 따르면 못 할 것도 없다.
생산함수는 생산요소 투입량과 생산물 산출량의 관계를 나타내는 함수다. 경제학자들은 생산요소 투입량에 따라 산출량이 정해진다고 본다.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만 있으면 다른 별에서도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경제학이 놓친 생산요소, 이른바 '자연자본'(natural capital)이다.
인간은 호흡할 수 있는 공기, 마실 물, 적합한 기온 등이 없으면 활동할 수 없다. 자연 생태계가 이런 조건을 유지해주는데, 경제학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경제학이 놓친 생산요소 '자연자본'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2월 6일자)에서 경제학자들이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자연의 경제 기여도를 짚었다. 파사 다스굽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연구 사례를 통해서다. 그는 영국 정부의 의뢰로 낸 최신 보고서에서 경제학자들이 경제활동에서 자연의 역할을 간과함으로써 환경파괴가 경제성장과 인간의 삶에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니콜라스 스턴 영국 런던정경대(LSE) 교수가 2006년 영국 재무부의 의뢰로 작성한 보고서도 맥락이 비슷하다. 기후변화와 개발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스턴 보고서'는 이 분야 대표 저작으로 손꼽힌다.
다스굽타와 스턴은 자연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경제활동에 필수불가결한 생산요소라고 봤다. 특히 다스굽타 교수는 환경을 자연자본의 축적으로 봤다. 인간이 자연자본에서 경제활동에 필요한 조절·유지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조절·유지 서비스는 공기를 정화하고 폐기물을 분해해 영양분으로 바꾸는 것은 물론 생존에 적합한 기온을 유지하는 환경순환에 따른 것이다.
◇자연자본, 22년 만에 거의 '반토막'
이코노미스트는 자연자본이 배제된 생산함수에서는 인간의 능력이 과대평가됐다며, 생산함수에 자연자본이 포함되면 경제성장에 대한 자연의 기여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생산함수에 자연자본이 반영되면 지금의 경제성장 속도가 언제까지 지속가능할지도 분석할 수 있다. 자연의 회복력이 한계에 이르면 자연자본이 쪼그라들어 자연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국내총생산(GDP)을 내면서 자연에서 자원을 꺼내 사용하고 폐기물을 배출한다. 쓰고 버리는 자원과 폐기물이 자연의 한계치를 넘어서면 자연자본이 감소하게 된다.
유엔에 따르면 1992~2014년 기계나 건축물 등 인간이 만든 생산자본(produced capital)의 가치는 2배, 노동력과 기술 등 인적자본의 가치는 13% 불어났다. 반면 자연자본은 40% 가까이 줄었다. 인간이 쓰고 버리는 자원과 폐기물의 양은 지구 1.6개분으로, 유일무이한 지구의 한계치를 훌쩍 넘어섰다고 한다.
다스굽타 교수는 현재의 경제 성장속도를 유지하면서 자연자본의 잠식을 막으려면 인류가 자연자본을 GDP로 바꾸는 효율성을 연간 10%씩 높여야 할 것으로 봤다. 1992~2014년 효율성 증가 속도는 연간 3.5%에 그친 것으로 추산됐다.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한계 불가피
이코노미스트는 이같은 계산에도 생태계 위기에 직면한 인류의 취약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자연 생태계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평형상태가 언제든 다른 악재로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파괴된 생태계를 본래대로 되돌리는 게 가능해도, 그 비용이 기존 생태계가 제공했던 서비스의 가치보다 커질 수 있다. 아마존의 산림 파괴가 임계점을 넘으면 열대우림이 갑자기 사바나(열대초원)로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변화다.
다스굽타 교수는 이런 이유로 경제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지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아무리 효율적으로 활용해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수준의 최대 GDP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효율성 향상 여지를 들어 경제성장의 궁극적인 한계에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자연의 가치는 '신성불가침'
문제는 인류가 위험을 인식하고 대응에 나서기 전에 인간의 활동이 자연을 과부하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이다. 과부하 상태가 지속되면 기온과 해양환경, 토양의 생산성 등이 임계점을 넘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될 수 있다.
다스굽타 교수는 자연을 경제학 관점에서 자산, 생산요소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자연의 신성불가침성을 강조했다. 복구할 수 없는 환경파괴를 막아야 한다는 정치적 의지를 다지려면 자연의 신성한 가치부터 널리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