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리포트]美국채시장의 일탈...'코로나 백신' 환호성 삼킨 이유

백신發 경기회복 기대감에 위험자산 랠리...美장기국채도 랠리 "연준, 인플레이션 못 살릴 것" 전망 탓...연준 추가부양 전망도

2020-11-29     김신회 기자
[사진=픽사베이]

글로벌 금융시장이 한껏 달아올랐다. 코로나19 백신이 곧 경제를 정상으로 되돌릴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투자자들이 과감해지면서 주식은 물론 원유, 심지어 정크본드(투자부적격 등급 채권)시장도 랠리가 한창이다.

주목할 건 경기전망에 민감한 미국 국채시장 분위기가 전혀 딴판이라는 점이다. 경기낙관론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 수요를 낮춰 국채 수익률(금리)을 높이는 게 보통이다. 만기 30년, 10년짜리 미국 장기 국채 금리는 낙관적인 백신 개발 소식에 잠깐 오르는가 싶더니 다시 하락세로 기울었다. 주식과 반대로 움직이는 게 일반적인 채권이 주식과 함께 랠리를 펼치고 있는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코로나19 백신 덕분에 경기전망이 밝아진 건 사실이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이 실제로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미국 장기 국채 금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이다. 통화가치 하락을 의미한다. 고정 수입을 보장하는 채권시장에는 악재가 된다. 인플레이션이 높아질 것 같으면 채권 수요가 줄어 가격이 하락하고 금리는 오른다. 반대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한동안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은 채권 금리 하락 요인이 된다.

◇백신 기대감에 불붙은 '리플레이션 트레이드'

미국 제약사 화이자는 지난 9일 독일 바이오엔테크와 함께 개발해온 코로나19 백신이 임상시험에서 90% 이상의 예방효과를 나타냈다고 발표했다. 최근에는 최종 분석에서 95% 이상의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화이자의 발표는 금융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이때부터 경기가 급격히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에 베팅하는 '리플레이션 트레이드'가 본격화했다. 덕분에 증시에서는 경기민감주가 급반등했고, 상품(원자재)시장에서는 구리 같은 산업금속, 원유 등의 가격 상승세가 돋보였다. 위험투자심리가 번지면서 정크본드시장도 반색했다.

뉴욕증시에서는 특히 에너지, 금융, 산업업종이 두각을 나타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고전했던 업종들이다. S&P500지수가 11월 들어 11% 오르는 사이 지수 내 에너지업종은 37%, 금융 20%, 산업업종은 17% 뛰었다. 

미국 정유사 엑손모빌의 경우 11월 들어 23% 올랐다. 이 회사가 '뉴저지 스탠더드오일'에서 이름을 바꾼 1972년 이후 월간 기준 최고 성적이 기대된다. 항공기업체 보잉, 크루즈선사인 카니발, 로열캐러비언 같은 종목은 50% 넘게 상승했다.

미국 중소형주 간판지수인 러셀2000도 21% 올라, 1988년 이후 최고의 월간 기록을 낼 태세다. 미국 대선(11월 3일)을 앞두고 41까지 치솟았던 뉴욕증시 '공포지수' 변동성지수(VIX)는 20 초반대로 떨어졌다.

디폴트(채무불이행) 직전에 있는 기업들이 발행한 채권(정크본드)에도 수요가 몰렸다. 11월 투자수익률이 7.3%에 이른다. 미국 셰일업계가 국제유가 급락으로 패닉에 빠진 2016년 이후 월간 최고 기록이 될 전망이다.

3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 추이[자료=FRED]

◇美국채시장 일탈..."인플레이션 기대치 낮아"

일련의 흐름은 경제여건이 나아질 것이라는 뚜렷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미국 국채시장에서는 다른 얘기가 들린다. 경기낙관론에 올라 타려면 경기전망에 특히 민감한 30년물 금리가 오르는 게 맞지만, 화이자 백신 소식에 잠깐 반등한 금리는 곧바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10년물 금리도 마찬가지였다.

WSJ는 미국 국채시장의 일탈이 코로나19 백신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와 인플레이션 전망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구조적인 저성장 국면에서는 더 이상 낮은 실업률과 제로(0)금리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국채 수요를 자극해 국채 가격 상승(국채 금리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통화완화공세로 경기를 부양했지만, 물가상승률은 대개 연준의 물가안정 목표치인 2%를 밑돌았다. 

존 로 리걸&제너럴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 다중자산펀드 책임자는 "백신 희소식은 경제성장에 관한 것이지, 인플레이션에 대한 게 아니다"라며 "실업률이 매우 낮은 수준에서도 연준은 임금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데 고전했다. 지금은 노동시장에 유휴인력(slack)이 훨씬 더 많다"고 지적했다.

임금 수준을 높여야 그나마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수 있는데, 여의치 않다는 얘기다.

시장의 기대인플레이션을 반영하는 미국의 5년물 물가연동국채(TIPS)와 일반 국채의 금리 차이(스프레드)는 지난 10월 말 현재 1.83%로 5년 전의 1.81%와 별 차이가 없다. 

더욱이 미국 국채시장 투자자들은 연준이 자금조달 비용 부담을 낮추기 위해 시중 금리의 기준이 되는 국채 금리의 상승을 억제할 것으로 본다. 

아울러 공화당이 미국 상원을 장악할 것이라는 관측은 추가 재정부양 축소, 통화부양 확대 전망으로 이어진다. 연준이 추가 통화부양책으로 장기 국채 매입 확대 카드를 꺼내면 국채 금리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WSJ는 트레이더들이 최근 미국 국채에 대한 기존 베팅을 청산하고 연준의 매입 확대로 금리가 더 떨어질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플레 없는 경제성장?..."'정상화' 충격 클 것" 

경제가 성장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으면 투자자를 비롯한 모두에게 유익할 수 있다. 가파른 성장세에도 금리를 계속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비정상적인 흐름이 마냥 지속되길 바랄 수는 없다. 시장이 인플레이션 조짐에 무감각해지면, 잠재적으로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어서다. 채권 금리가 폭발적으로 오르면 주식을 비롯한 다른 자산시장에도 연쇄충격이 불가피하다.

백신 기대감이 갑자기 꺾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백신 개발에 성공해도 이를 유통해 실제 광범위하게 접종하기까지 여러 난관이 있을 수 있다. 백신 공급에 장기간 문제가 이어지면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경제적 충격이 이달 금융시장의 승자들을 다시 패자로 만들 수 있다고 WSJ는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