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인사이드]'관피아' 부끄럽지 아니한가
수사당국의 압수수색이 한창이 한 사무실. 고급 정장을 차려입은 한 남성이 분주한 현장을 가로질러 책임자 앞에 선다. "몇 기에요? 여기서 이러면 안 되지. 내가 당신 선배인데."
짧은 문답을 한 뒤 전화를 건다. "김 부장, 뭘 잘 못 알았어. 글쎄 내가 보장하고 책임진다니까. 그래 언제 밥 한번 먹읍시다."
훈계를 하듯 말을 쏟아낸 남성으로부터 전화기를 건네받은 책임자는 "네. 네"라고 대답한 뒤 빈손으로 돌아간다.
최근 금융업계의 관피아 논란을 접하면서 영화에서 자주 봤을 법한 장면이 머리를 스쳤다.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과 상임위원을 지낸 정지원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손해보험협회장으로 가게 됐고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 등을 역임한 김광수 NH농협금융 회장은 차기 은행연합회장으로 단독 추대됐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고위 관료 출신들이 은행연합회 등 금융권 협회의 차기 회장 하마평에 올랐고 이전에도 관피아로 불리는 사람들이 주로 자리를 차지했다.
규제의 영향이 큰 은행과 보험사 등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당국과 소통이 보다 원활한 인물을 선호하는 게 당연할 수 있다. 가능하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규제를 유도하고 부담을 줄이는 게 더 쉽게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위 관료 출신이 이런 요구에 호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리를 찾아간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소통이라고 표현하는 일이 사실상 현직에 있는 후배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란 점을 생각하면 낯부끄러운 행동을 하겠다고 뛰어드는 셈이니 말이다.
공직 생활에서 쌓은 경험을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쓰기 위해서라거나 봉사하겠다는 말들도 어불성설이다.
바람직한 금융산업 발전을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금융회사가 지속가능한 이익을 내면서도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 금융소비자 보호가 이뤄지는 방향일 것이다.
그런데 금융협회장은 철저하게 금융회사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자리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금융소비자 보호와의 적절한 균형을 추구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의미다.
금융산업 발전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현직에서 못한 일을 퇴직 후에 더 잘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협회장으로서 정책이나 규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지만 현직에서 직접 만들고 실행하는 위치가 아니라 한계가 분명하다. 양념 역할은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는 뜻이다.
퇴직 후에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면 비영리 단체로 가거나 개인적으로 연구소 등을 설립해 정책 제안을 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게 맞다. 최소한 금융회사로부터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 자리는 아니어야 한다. 그리고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는 것은 봉사가 아니란 사실은 어린 학생들도 안다.
금융산업 발전을 금융회사 이익 극대화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염치가 없는 게 아니라면, 공직을 더 많은 돈벌이를 위한 발판으로 여긴 게 아니라면, 방패막이 역할을 자처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