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혼돈의 워싱턴DC...'제갈길' 파월 연준의장 운명은
연준, 제로금리 유지 등 통화완화기조 고수...양적완화 확대 가능성 시사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5일(현지시간)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0~0.25%로 동결하는 등 기존 통화완화정책 기조를 고수하기로 했다.
연준 주요 인사들은 경기 수준을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전으로 되돌리려면 추가 재정부양은 물론, 추가 통화부양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번 회의에서는 추가 정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시중 자산을 매입해 돈을 푸는 양적완화 확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에 따르면 연준은 이날 이틀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끝에 제로(0)금리 정책과 더불어 월간 800억달러의 미국 국채와 400억달러의 모기지담보부증권(MBS) 등을 매입하는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계속 가동하기로 결정했다. 일련의 결정은 만장일치로 나왔다.
이번 결정은 미국의 경기 수준이 팬데믹 사태 이전에 훨씬 못 미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연준은 성명에서 "경제활동과 고용이 계속 회복되고 있지만, 연초보다 한참 낮은 수준에 있다"고 진단했다.
새 경기판단은 지난 9월 회의 때보다 후퇴한 것이다. 연준은 당시 "경제활동이 최근 몇 달간 더 강해졌다"고 평가했다.
연준은 향후 경제 동향이 오직 바이러스의 동향에 달려 있다며, 최근 다시 급격히 번지고 있는 코로나19에 대한 경계감을 나타냈다.
연준은 또 이날 성명에서 제로금리 기조를 한동안 유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지난 9월 회의 때 제시한 기준금리 인상 조건 3가지를 재확인했다. ①노동시장이 완전고용 수준으로 회복되고 ②물가상승률이 2%에 도달하되 ③한동안 2%를 완만하게 웃도는 수준이 될 때까지는 제로금리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연준은 지난 회의 때 공개한 금리전망을 통해 적어도 오는 2023년까지 제로금리 기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을 시사한 바 있다.
연준은 전보다 나빠진 경기판단과 미국 대선 결과를 둘러싼 불확실성에도 추가 통화부양 조치는 내놓지 않았다.
다만 파월 의장은 회의 뒤에 가진 회견에서 연준이 경기회복을 위해 쓸 수 있는 카드가 여럿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통화정책의 힘이 다하거나, 실탄이 바닥났느냐?"고 자문한 뒤, "대답은 '노'(no)"라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어려운 시기에 경제를 떠받치기 위해 강력한 수단들을 필요한 만큼 오래 사용할 것"이라며 "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문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이번 회의에서 경기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자산매입 방법의 역할에 대해 논의했다"며 양적완화 확대 가능성을 내비쳤다.
◇美선거판 대혼란...파월 의장 운명은
이런 가운데 시장에서는 미국 대선 결과가 연준에 미칠 영향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장 관심이 쏠리는 건 파월 의장의 운명이다. 2018년 2월 취임한 그의 4년 임기는 2022년 2월 끝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지명한 파월을 줄기차게 비판해왔다. 그는 연준이 금리를 더 빨리, 심지어 '마이너스' 수준까지 낮추지 않아 경제를 해치고 있다고 주장하기 일쑤였다. 파월을 해임하겠다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트럼프의 연준 공격이 '권력남용'이라며 그가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성을 해치려 한다고 비판했다.
시장에서는 트럼프와 바이든 가운데 누가 이번 대선의 승자가 되든, 연준 의장으로는 파월만한 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최근 투자자들에게 워싱턴DC에서 백악관 주인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 파월 의장이라며, 대선 결과가 어떻든 그가 궁극적인 승자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파월이 주도해온 연준의 통화정책을 시장이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워싱턴DC에는 백악관과 의회는 물론 연준 본부도 자리 잡고 있다.
로이터의 브레이킹뷰 칼럼니스트인 리처드 빌스도 지난 4일 쓴 글에서 파월 의장이 앞으로 몇 년간 초완화정책을 고수하기로 한 만큼, 연준 정책의 일관성을 위해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 그를 재지명하기 쉽다고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바이든이 백악관에 입성하면 연준 의장 교체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임자가 낙점한 연준 의장을 교체하지 않는다는 백악관의 40년 전통을 깨면서 파월을 자리에 앉힌 만큼, 연준 의장을 민주당 측 인사로 바꾸라는 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고 봤다.
역대 연준 의장들이 사실상 백인남성 일색이었던 만큼 인종 다양성 측면에서 파월을 교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에서는 최근 인종차별 반대시위가 잇따르기도 했다. 파월 전임자인 재닛 옐런은 백인으로, 연준 최초 여성 의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