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리포트-부자의 속살]'90살' 생일 버핏이 준 선물
빌 게이츠가 워런 버핏 90세 생일을 축하하는 동영상[출처=게이츠노트]
부자들은 선망과 시기의 대상이다. 부자를 꿈꾸는 이들은 많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아서다. 특히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는 '금수저'들은 부자들에 대한 시선을 불편하게 만든다. 주목할 건 세계적인 갑부들 가운데 다수가 자수성가형이고, 이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 부자 지형과 부자들의 이야기를 [부자의 속살]에서 만나보시라. <편집자주>
"워런은 정신이 30살처럼 날카롭고 웃음은 10살짜리 개구장이 같으며 입맛은 6살짜리 아이 같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가 30일(현지시간) 오랜 친구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90세 생일을 맞아 블로그에 쓴 글의 일부다.
'90번째 생일을 축하해요. 워런!'(Happy 90th, Warren!)이라는 제목 아래 써 내려간 글에는 버핏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깊이 배어있다. 게이츠는 함께 올린 동영상에 직접 버핏을 위한 생일 케이크를 만드는 과정도 담았다. 6살짜리 입맛을 가진 버핏이 즐겨먹는 달달한 과자 '오레오'로 만든 초코케이크다.
게이츠는 버핏과 처음 만난 게 1991년 7월 5일이라고 했다. 만난 지 1만649일이 됐다는 것이 연인들 못지 않다. 버핏이 평생 잠을 잔 시간이 30년이라고 셈할 정도다. 사무실 전화에 단축키로 저장된 전화번호는 부인 멜린다와 버핏뿐이란다.
숫자에 밝은 게이츠가 한 가지 헤아리지 못한 게 있다면, '기부왕' 버핏의 영향력이다. 게이츠는 사실상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한 버핏의 약속이 전 세계에 미친 영향은 헤아릴 수 없다고 했다.
버핏은 게이츠와 함께 재산 절반 이상을 기부하는 '기빙플레지'(Giving Pledge) 운동을 주도해왔다. 버핏은 이미 오래 전에 게이츠 부부가 운영하는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등을 통해 전 재산의 90% 이상을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버핏이 이를 약속한 2006년 이후 기부한 재산은 370억달러(약 43조7000억원)가 넘는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포브스가 집계한 세계 억만장자 순위 6위(30일 현재, 824억달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버핏은 지난 2월 공개한 주주서한에서 죽을 때까지 회사 지분을 모두 처분하려면 12~15년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의 편지에는 더 일찍 기부에 나서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버핏은 2004년 세상을 떠난 첫 아내 수잔이 일찍이 자신에게 빨리 기부를 시작하라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버핏의 90세 생일을 맞아 게이츠 같은 거물이 손수 케이크를 만들고, 블로그에 글을 올린 건 개인적인 인연 때문만이라고 보기 어렵다.
미국 투자전문매체 모틀리풀은 '슈퍼 투자자'인 버핏은 그간의 성과만으로도 큰 생일선물을 받을 만 하지만, 사실은 그가 우리에게 대단한 선물을 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가 지금껏 기부한 수백억달러를 첫손에 꼽았다.
모틀리풀이 다음으로 꼽은 선물은 기빙플레지다. 버핏이 2010년 게이츠 부부와 이 운동을 시작하면서 기부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것이다. 기빙플레지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현재 기부를 약속한 이가 23개국에 걸쳐 210명에 이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부부, 래리 앨리슨 오라클 회장, '괴짜'로 유명한 리처드 브랜슨 영국 버진그룹 회장 부부 등 기업가는 물론 미국 헤지펀드 매니저 빌 애크먼, 전설적인 투자자 제레미 그랜덤 부부,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등이 기부를 약속했다.
모틀리풀이 마지막 세번째로 꼽은 버핏의 선물은 투자와 삶에 대한 교훈이다.
투자에 있어 버핏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가 '투자의 귀재',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미국 네브라스카주 시골도시인 오마하는 버핏의 고향이자, 버크셔의 본거지다.
버크셔의 주가는 1964년부터 지난해까지 270만% 넘게 올랐다. 1964년에 투자한 1000달러가 2160만달러로 불어났을 것이라고 모틀리풀은 설명했다. 버핏이 시골의 작은 방직회사에 불과했던 이 회사를 인수한 게 1965년의 일이다.
그렇다고 버핏이 돈을 불리는 투자에만 집착한 건 아니다. 그는 자신의 투자철학을 공유하는 데 공을 들였다. 언론 인터뷰에 관대했고, 매년 오마하에서 잔치처럼 열리는 버크셔 주주총회 때는 몇 시간씩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온라인으로 열린 올해 주총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울러 버핏은 매년 주주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회사의 성과와 투자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상세히 밝혀왔다. 2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그는 여동생에게 얘기하듯 쉬운 말로 투자자들을 '가치투자'의 세계로 이끌었다.
게이츠는 버핏의 "옳고 그름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판단력"을 가장 존경할 만한 점이라며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인재를 보는 눈 또한 경이로운 수준"이라고 극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