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패권의 민낯]美국채 파는 외국인들...눈덩이 부채 어쩌나
①빚잔치 끝났다
코로나19 펜데믹은 미국 경제패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지난 수십년간 세계 정치·경제 질서를 호령한 미국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를 낼 정도로 취약한 시스템을 노출하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 실패는 대공황급 충격과 맞물려 미국 경제패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2회(①빚잔치 끝났다 ②흔들리는 달러)에 걸쳐 미국 경제패권의 취약성을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미국의 빚잔치는 끝났다."
미국 투자전문매체 시킹알파는 미국이 부채를 지렛대로 강한 성장세를 뽐내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며 최근 이렇게 단언했다. 코로나19가 미국 경제에 유례없는 충격파를 던지고 미국 정부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미국 경제가 과거처럼 신용 팽창을 기반으로 하는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는 지적이다.
◇美 떠나는 글로벌 자금...외국인 美국채 순매도
이런 우려는 최근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에서 확인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미국 경제 하강이 본격화하자 미국 국채 매도에 나섰다. 국제금융협회(IIF) 자료에 따르면 3월에만 미국 국채 시장에서 830억달러(약 100조8000억원)가 빠져나갔다. 4~5월에는 230억달러가 유입됐지만,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올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의 순매도자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국채는 안전자산의 대명사 가운데 하나다. 평소는 물론이고, 지금처럼 세계 경제가 불안할 때는 투자 수요가 더 강해지는 게 보통이다. 지난 20년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순매도한 것은 3년이 전부다. 나머지 17년은 순매수자였다. 그만큼 투자자들은 미국 경제를 세계의 중심축으로 여기면서 미국 국채로 대표되는 달러 자산을 안전자산으로 오랫동안 신뢰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올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에 등을 돌리는 건 미국 경제와 달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는 걸 방증한다고 시킹알파는 지적했다.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통화완화정책을 압박하며 달러 약세를 주문하던 때도 사정이 비슷했다. 당시에도 외국인 투자자들은 불안감에 미국 국채를 순매도하면서 달러 자산에서 이탈했다.
그러나 연준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흔들리지 않고 미국 경제가 꾸준히 확장할 수 있도록 통화정책을 지휘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을 다시 미국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다. 2017~2019년 해외 투자자들은 다시 미국 자산을 순매수했다.
상황이 바뀐 건 올해 코로나19 팬데믹이 미국을 강타하면서다. 전염병을 억제하기 위한 봉쇄령이 떨어지면서 미국 경제가 유례없는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공포가 번졌다.
이번에도 연준이 나섰다. 미국 금융시장의 원활한 기능을 유지함으로써 경제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3월 중순부터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수조 달러의 채권을 사들이는 등 시장에 막대한 자금을 풀었다.
◇美 신뢰 '바닥'...눈덩이 부채에 성장둔화 공포
그러나 이제 투자자들은 연준이 전적으로 모든 부담을 짊어질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있다고 시킹알파는 지적했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과 반세계화 기조, 미흡한 코로나19 대응, 전국적인 흑인사망 시위 등은 미국 경제 역풍에 대한 우려를 부추기고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훼손하면서 투자자들을 밀어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미국이 수십 년 동안 경제 성장의 바탕을 신용 팽창에 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호황일 때에는 민간 부문이 신용을 늘리면서, 불황일 때에는 공공 부문이 유동성을 대량으로 주입하면서 성장에 동력을 댔다. 민간과 공공 할 것 없이 빚이 점점 늘어났지만 이코노미스트나 시장 모두 이런 방식에 이의가 없었다. 경제가 살아나면 갚을 수 있는 빚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유례없는 위기가 현실화하면서 급속히 불어나는 빚을 상쇄할 만큼 강하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믿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역시 지난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후 기자회견에서 "경제 회복까지 갈 길이 멀다"며 V자 회복 기대감에 찬물을 뿌렸다. 연준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내년 말에도 지난해 말 수준을 되찾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경제 침체가 장기화할수록 부채 관리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연준은 경제가 더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초저금리와 무제한 자산매입 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채가 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불어넣기보다는 부채로 인한 성장둔화 공포를 키우고 있다는 게 시킹알파의 진단이다. 임계점을 넘는 부채는 경제 성장을 돕기보다 성장에 해를 미치게 된다.
성장이 따라주지 않으면 경제와 시장이 고스란히 빚을 떠안아야 한다. 빚이 늘어나면 경제시스템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부채 뇌관이 터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중앙은행의 시장 왜곡은 심화하고 성장 잠재력은 더 낮아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대규모 부채 구조조정이나 무질서한 연쇄 디폴트(채무불이행)로 이어질 위험도 크다. 시킹알파가 미국의 빚잔치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 매체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국을 떠나면서 지속불가능한 부채를 처리하는 일은 결국 미국 국내 투자자들의 몫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