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플&]신동빈 1심 집행유예..한숨 돌린 롯데
횡령·배임 주요 혐의 일부만 유죄 판단..신격호 법정구속 안 해
재계 5위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난해 10월 거액의 횡령·배임 등 경영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래 429일 만이다. 롯데 측은 총수의 구금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게 되면서 크게 안도하는 모습이다.
◇ 신동빈, 징역 1년8개월에 집행유예 2년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징역 1년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 중 일부만 유죄로 판단했다. 신 회장은 롯데피에스넷과 관련한 471억원대 특경법상 배임 혐의는 '경영상 판단'이라는 이유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롯데시네마 매점 운영과 관련한 배임 혐의도 손해액을 산출하기 어렵다며 특경법상 배임이 아닌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가 인정됐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배임 혐의 일부와 횡령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4년과 벌금 35억원이 선고됐다. 거액 탈세는 인정되지 않았다. 다만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법정 구속하지는 않았다.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에게 '공짜 급여'를 준 부분도 무죄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특경법상 횡령 혐의의 공범으로 기소된 신동주 전 부회장은 무죄를, 탈세·배임의 공범으로 기소된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징역 2년을,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은 한국 롯데그룹 계열사에서 일한 적 없는 신 전 부회장과 서씨 모녀에게 508억원을 급여 명목으로 지급해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롯데시네마가 직영으로 운영하던 영화관 매점을 서씨 모녀나 신 이사장이 운영하는 회사에 임대 형식으로 넘겨 778억원(신 회장은 774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도 적용됐다.
신 회장은 롯데피에스넷이 ATM기를 구매하는 과정에 중간 업체로 롯데기공을 끼워 넣거나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롯데피에스넷의 유상증자에 계열사들을 참여시키는 등 471억원의 배임을 저지른 혐의도 있다. 신 총괄회장은 신 이사장이나 서씨 모녀의 생활 지원을 위해 자신이 차명 보유한 롯데홀딩스 지분을 가장 매매하는 식으로 넘겨 증여세 706억원을 포탈하고, 비상장 주식을 계열사에 고가로 팔아 94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도 받았다.
◇ 한숨 돌린 롯데 "지주사 체제·해외사업 그대로 추진할 것"
총수인 신동빈 회장이 22일 열린 경영비리 관련 1심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자 롯데그룹은 크게 안도하는 모습이다. 앞서 롯데 안팎에서는 신 회장에 대한 구형량이 10년으로 워낙 높아 실형 선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것으로 내다봤다. 롯데 관계자는 이날 "법원의 현명한 판단에 경의를 표한다"며 "총수의 구금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게 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국가 경제에 더욱 기여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는 신 회장이 법정 구속될 경우 10조원 이상 투자한 해외사업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지주사 체제 전환, 한일 통합경영 등에 적잖은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걱정했다. 신 회장이 영어의 몸이 되면 정상적으로 진행하거나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신 회장 지분이 1.4%에 불과한 일본롯데홀딩스의 경우 그동안 창업주 아들이라는 그의 상징성과 개인적 인맥으로 구심력을 유지해오던 터였다. 실형 선고 시 경영권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제기되던 때였다. 한국 롯데의 중간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지분을 99% 이상 보유한 일본롯데홀딩스는 일본인 종업원·임원·관계사 등 일본인 지분율이 50%를 넘는다.
롯데는 신 회장 구속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했기 때문에 일본롯데홀딩스가 한일 롯데 통합경영의 틀 안에서 움직이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사업 역시 지금까지처럼 큰 차질 없이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0월 롯데지주가 공식 출범한 데 이어 한일 롯데를 연결하는 호텔롯데 상장까지 마무리돼야 비로소 완성되는 지주사 체제 전환도 차질 없이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검찰이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2·3심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예단할 수 없다. 이에 롯데는 상황을 낙관하지 않고 신중히 대처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롯데 관계자는 "비록 집행유예가 선고되기는 했지만 이제 1심이 끝났을 뿐이다.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가 인정된 만큼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면서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기업활동을 흔들림 없이 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