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이의 글로벌아이]막나가는 트럼프 "뒷일은 몰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뜩이나 불안한 중동 정세를 더 들쑤셔놨다. 그는 국제법상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라고 못 박아 파문을 일으켰다.
예루살렘은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성지가 한 데 모인 곳이다. 수천 년 전부터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예루살렘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 공존해왔다.
트럼프는 지난 6일(현지시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수도라고 선언했다. 국제사회는 트럼프가 금기를 깼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이슬람권에서는 험한 말이 쏟아졌다. 터키에서는 트럼프가 '레드라인'을 넘었다는 말이 나왔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을 선전포고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에 반이스라엘 봉기(인티파다)를 촉구했다.
예루살렘 선언 뒤엔 유대인의 막강한 영향력이 있었다. 유대계 미국인은 약 600만명으로 미국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하다. 이들의 자금력과 조직력은 워싱턴 정가를 들었다 놓을 정도다. 백악관이 친이스라엘 정책에 공들여온 이유다.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는 1948년 독립선언을 한 이스라엘을 재빨리 국가로 인정했다. 재선전략의 일환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트럼프도 30%대에 불과한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면 유대인의 환심을 살 필요가 있다.
주목할 건 이번 파문이 트럼프 외교·경제정책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한 게 이번 파문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탈퇴를 전제로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재협상에 나선 것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해온 트럼프가 자국 이익을 위해 기존 질서와 규칙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버트 졸릭 전 세계은행 총재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쓴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런 향후 대책 없는 '벼랑 끝 정책'으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평화와 번영에 공헌해온 미국이 '세계의 화약고'로 변해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는 트럼프가 친이스라엘 정책으로 국익을 포기했다고 꼬집었다. 트럼프의 고립주의가 결국 스스로 목을 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트럼프의 정책 행보가 바뀔 것 같지 않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이후 약 30년 만에 가장 큰 세제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의 지난해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비롯한 스캔들로 국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 승리를 장담했다. 그가 먼저 오를 시험대는 내년 11월에 치를 중간선거다. 연임을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르는 의회 선거에서는 대통령 당선자 소속 정당이 이기는 게 보통이지만 대통령 임기 중에 맞는 중간선거에서는 대통령 소속 정당이 의석을 잃는 경우가 다반사다.
트럼프가 중간선거에서 승리해 2020년 대선에서 재선 기반을 마련하려면 지난해 확보한 지지 기반을 되살리는 게 관건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졸릭 전 총재의 말대로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로 대표되는 대선 공약을 실천하는 데 집중할 뿐 향후 대책을 고민할 게 아니라는 얘기다. 예루살렘 선언도 대선 공약 가운데 하나였다. 보호무역, 이민 제한 등 고립주의 정책에도 더 힘이 실릴 전망이다.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최근 37개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국제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대응을 신뢰할 수 없다고 답한 이가 74%에 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59%)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53%)에 대한 불신 비율을 훌쩍 웃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