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전쟁 D-1]자동차·철강..한미FTA 도마 오르나
한미FTA 재협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꾸준히 제기되어 온 문제다. 보호무역주의를 토대로 정권을 잡은 만큼 무역적자 해소가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수차례 무역적자를 언급, 한미FTA의 불공정함을 강조해왔다.
실제로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미FTA가 발효된 이후 미국의 대(對)한국 상품수지 적자가 132억달러(약 15조원)에서 276억달러(약 31조4000억원)로 늘었고, 미국의 한국에 대한 상품 수출이 줄었다"며 개정 협상을 요청했다.
그 결과 오는 22일 한미 양국 공동위원회의 특별회기가 이뤄진다. 재협상에 앞서 진행되는 자리로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합의점을 찾기 위한 중요한 회의다.
'총성 없는 전쟁'이라 할 수 있는 통상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주도권 확보를 위한 양국의 기싸움이 시작된 가운데 우리 정부는 한미FTA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객관적인 분석을 먼저 하자고 제안할 방침이다. 우리쪽 입장을 분명히 하고 미국측에 끌려다니지 않기 위한 전략이다. 기본적으로 한미FTA 수혜를 양국이 모두 보고 있어 미국 내에도 폐기를 반대하는 기업이 많다. 이에 우리 정부는 미국의 개정 요구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특별회의 테이블에는 자동차, 철강, 여행서비스 등이 의제로 올라올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와 철강은 트럼프 대통령이 불공정 무역의 대표 품목으로 지목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 수치만 보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이 압도적이지만, 실제 한미FTA 체결 이후 효과로 보면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지난해 기준 154억9000만달러로 미국차 수입액(16억8000만달러)보다 9배가량 많다. 하지만 최근 5년간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12% 증가한 데 반해 미국 자동차 수입액은 37%나 늘었다. 시장 점유율도 현대·기아차는 한미FTA 발표 직전인 2011년 미국에서 8.9%의 점유율을 보였지만 지난해는 8.1%로 오히려 떨어졌다. 국내에서 차량을 판매하는 GM(한국지엠, 캐딜락) 차량은 동기간 8.9%에서 9.9%로 증가했다.
철강의 경우도 미국 정부의 반덤핑·상계관세 부과 조치 등으로 한미FTA 발표 이후 오히려 1조원 이상 감소한 상태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국내 철강회사들의 대미 철강제품 수출금액은 2012년 36억8000만달러에서 지난해 26억8000만달러로 급감했다. 미국 철강 소비 점유율도 3% 수준으로 낮다.
그런데도 미국철강협회(AISI)는 "한국산 철강 제품은 한국 정부의 철강산업에 대한 보조금 혜택으로 원가 이하에 덤핑되고 있다"는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사실상 보조금이라는 것이다.
관세의 경우도 양국 모두 공평한 혜택을 받고 있다. 자동차는 지난해 철폐됐고, 철강은 이미 2004년부터 무관세로 수출되고 있어 한미FTA와 무관하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한미FTA의 객관적인 효과를 먼저 피력한다는 전략이다. 반면 미국측이 자동차, 철강산업의 관세 부과를 들고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자국 상품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가장 실리적인 조치이기 때문이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시점에서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지만 만약 관세 재부과가 시행된다면 승용차 대미 수출 가격 경쟁력 약화라는 측면에서 자동차 산업에는 부정적 영향요인"이라며 "최근 미국자동차 시장은 수요감소와 경쟁심화로 어려운 환경에 있어 한국 기업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의 경우 연비 규제, 수리 이력 고지 등의 완화를 요구해 올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의 연비 규제는 리터당 17km로 미국(16.6km)보다 까다롭기 때문이다. 다만 연비 규제의 경우 유럽(EU)은 우리보다 더 엄격한 18.1km를 적용하고 있고 일본도 16.8km로 기준으로 삼고 있어 불합리한 규제는 아니다. 수리 이력 고지 역시 미국 36개 주에서 이미 우리와 비슷한 제도를 시행 중이며 한국차 역시 같은 규제를 받고 있다.
이 밖에도 여행서비스산업 역시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한미 서비스 분야 통상 현황과 FTA 대응 방향' 보고서를 통해 "미국측에 한미 FTA 체결 당시 없었던 신산업, 핀테크, 첨단서비스산업 등에 대해 보호 의제로 제기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한미 FTA 재협상이 이뤄진다면 어느 경우든 자동차, 철강업종의 피해는 불가피할 전망"이라며 "한미FTA의 상호 호혜성을 양국이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