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플&]서민경제로 향한 文정권 '사정 칼날'
문재인 정부의 사정 칼날이 기업들로 향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전형적인 '재계 길들이기'와는 시작이 다소 다르다. 사정당국의 눈길이 서민경제 정상화, 즉 '갑질 근절'에 꽂혔기 때문이다.
첫 타자가 된 곳은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 유통·프랜차이즈 업계다. 가맹본사가 영세 가맹점주를 핍박해 강제로 점포 리뉴얼 비용을 떠넘기거나, 불공정거래 등을 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는 경우가 급증한 시장이다.
실제로 업계와 공정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가맹사업법위반으로 제재를 받은 업체는 지난해보다 4배가량 증가했다. 불공정거래와 허위과장정보제공 등 가맹사업법 위반이 15건에 달했다. 지난해 연간 위반 건수(12건)보다 많은 수치다.
분쟁조정신청도 급증했다. 지난 5월까지 공정거래조정원에 접수된 가맹사업 관련 분쟁조정신청은 280건.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한 수치다.
서민경제를 바로 세우기 위한 사정당국의 사정 칼날이 유통·프렌차이즈 업계로 향한 것은 당연지사다. 기업들은 서둘러 백기를 던지며 몸 사리기에 나섰다.
김상조 공정위원장 취임 후 첫 현장조사 대상이 된 BBQ는 가맹점으로부터 광고비 분담 명목으로 판매 수익의 일정 부분을 거둬간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최근 두 차례나 가격 인상을 단행해 반발을 사기도 했다.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자 BBQ는 가격 인하에 나섰다. 이성락 사장은 취임 3주 만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다. 이를 본 교촌치킨, BHC 등 치킨 업체들도 가격 인하에 동참했다.
갑질 만행으로 비난받은 미스터피자 정우현 MPK그룹 회장은 서울중앙지검이 본사와 관계사 2곳을 압수수색한 지 닷새 만에 대국민 사과와 함께 회장직에서 물러났다.미스터피자는 가맹정상생협의회 구성 등 갑질 근절에 앞장설 것을 약속했다.
유통업계는 하림그룹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편법 승계, 일감몰아주기로 공정위의 타깃이 됐기 때문이다. 김홍국 하림글룹 회장의 장남 준영(25세)씨가 10조원 규모에 달하는 그룹을 승계받는 과정에서 증여세를 단 100억원 밖에 내지 않아서다. 이마저도 사실상 회사가 대납해줬다는 지적이다.
성주디앤디도 하도급업체에 대한 갑질 논란에 휩싸여 있다. 에스제이와이코리아, 원진콜렉션 등 MCM 하도급업체들은 성주디앤디를 불공정 거래 행위로 공정위에 지난 3월 신고한 상태다. 이들은 부당한 제조 단가 적용, 샘플비 미지급, 운송비 미인정 등 불공정거래를 주장하고 있다.
제약업계 역시 공정위의 조사를 받게 됐다. 국내에 시판된 주요 전문의약품 시장에서 특허권 남용을 통한 담합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신약특허권자와 복제약사가 특허분쟁과 경쟁 대신 인센티브 등 경제 이익을 제공하는 '역지불합의'를 맺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담합은 새로운 업체의 복제약 시장 진입을 막고 제약 가격을 높게 유지해 국민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 부품업체 현대위아도 지난 25일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 검찰 고발을 당했다. 사유는 하도급대금 결정 및 부당 감액 등 하도급법 위반이다. 현대위아는 최저가로 응찰한 업체에 추가로 금액을 인하할 것을 요구, 입찰 금액을 부당감액하는 등 갑질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갑질 근절이 서민경제의 정상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사정당국은 갑질 기업에 대한 조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공기업의 갑질 행태를 임기 내에 반드시 뿌리 뽑겠다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의 통신비 절감 정책, 실손보험료 인하 등의 정책도 같은 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 통신비 절감 대책은 발표와 동시에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3사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 약정할인료 확대, 보편요금제 도입 등을 정부가 밀어붙여서다.
실손보험료 인하와 조정 폭 규제 25% 유지 정책도 보험업계의 반발로 이어졌다. 업계는 "손해율이 높은 상황에서 보험료를 낮추라는 것은 보험사가 부담을 안으라는 얘기"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나섰다.
정부는 두 정책 모두 밀어붙일 계획이다. 통신비 인하와 실손보험료 인하는 서민들의 경제 부담을 완화하는데 일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