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이의 글로벌아이] 러시아혁명 100주년 푸틴은 '모르쇠'
러시아에서 지난 26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는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는 물론 중소도시 등 90여곳을 휩쓸었다. 도시별로 수백~수천, 러시아 전역에서 수만 명이 모여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을 성토했다. 모스크바에서만 1000명 이상이 체포됐지만 시위 열기는 쉽게 꺾일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게 이번 시위는 2011~2012년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한다. 급격히 불어난 시위 군중에 주최 측이 놀랐을 정도다.
이번 시위는 규모뿐 아니라 타이밍도 2011~2012년 시위와 닮았다. 2011~2012년 시위는 푸틴의 대통령 복귀를 앞두고 절정으로 치달았다. 총리로 물러나 있던 푸틴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러시아를 다시 위대하게'라는 기치를 내걸고 2012년 5월 크렘린궁에 복귀했다. 이번 시위는 푸틴이 1년 뒤인 내년 3월 대선에서 4번째 '차르'(절대군주) 권좌를 노리고 있는 가운데 일어났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올해는 '러시아 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다.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은 '2월 혁명'과 '10월 혁명'을 아우른다. 러시아 구력이 아닌 현재의 달력으로는 '3월 혁명'과 '11월 혁명'이 된다. 2월 혁명은 제정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리며 '차르시대'의 종지부를 찍었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10월 혁명을 통해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소비에트)를 수립했다.
푸틴 정권은 올해가 러시아 혁명 100주년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지난 15일이 100년 전 니콜라이 2세의 퇴위 선언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진 날인데도 정부 차원의 기념행사는 전무했다.
차르시대의 부활을 꿈꾸는 푸틴에게 러시아 혁명은 좋은 기억이 아니다. 100년 전 혁명을 상기시켜봐야 자신에게 부메랑이 돌아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2011~2012년 반푸틴 시위를 주도한 인물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 작가 보리스 아쿠닌은 지금 러시아의 분위기가 100년 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폭풍전야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경기침체와 부정부패, 헛구호에 그치고 있는 개혁 등이 러시아인들의 불만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3년째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가운데 터진 이번 시위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의 부정축재 의혹에서 촉발됐다.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최근 유튜브에 공개한 동영상에서 메드베데프가 다수의 호화 주택과 요트, 포도밭 등을 갖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게 도화선이 됐다.
아쿠닌은 러시아에서 민주화운동이 항상 강권통치의 부활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100년 전 러시아 혁명 뒤에는 70년에 걸친 소련의 지배가 있었고 1991년 소련 붕괴 뒤에는 푸틴이 절대 권력을 거머쥔 차르로 부상했다.
2011~2012년 반정부 시위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에 복귀한 푸틴은 2014년 일방적으로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하며 내부 분열을 봉합했다. 푸틴은 이때 80%로 끌어올린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내년 대선에서 승리할 게 확실한 푸틴은 자신의 권력을 더 강화하려 할 게 뻔하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지난 주말 일어난 반정부 시위가 이전과 다른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차이는 당국이 이번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했는데도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는 점이다. 시위가 러시아 방방곡곡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푸틴 정권 아래 태어난 젊은 세대가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도 그렇다. 이들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적극 활용해 러시아 정부의 검열을 무력화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바람 불면 꺼질 촛불'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푸틴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심복인 메드베데프를 버리고 정적인 나발니를 살리는 게 최선일 수 있다. 메드베데프는 러시아인들의 공적이 된 지 오래고 나발니는 내년 대선 출마 선언으로 시위대의 희망으로 부상했다. 푸틴이 이길 게 뻔한 대선에서 나발니의 출마를 막을 이유가 없다. 나발니는 이번 시위 현장에서 체포돼 약 39만원의 벌금 및 15일 구류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