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이의 글로벌아이] 박근혜의 '진실'과 '대안적 사실'

2017-03-14     김태연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12일 저녁 청와대를 나와 삼성동 집으로 내달리는 모습을 보는 내내 씁쓸했다. '야반도주'와 다름없어서였다. 하지만 웬걸. 집 앞에 내린 그는 금의환향이라도 한 듯 지지자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이날 삼성동행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날 낮만 해도 그가 13일에나 삼성동으로 떠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밝게 웃던 박 전 대통령이 옛집에 들어선 뒤 눈화장이 번질 정도로 펑펑 울었다는 얘기도 있다. 일련의 증언은 그가 자신의 파면을 예상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진실은 자신의 편이라고 굳게 믿었던 모양이다.

대다수 국민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 인용을 '상식'으로 여겼다. 박 전 대통령은 이걸 왜 몰랐을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는 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박근혜의 진실은 그 자신과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믿고 싶어 하는 진실일 뿐 실상은 허위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헌재가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며 제시한 근거들뿐이다.

미국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요즘 곳곳에서 진실게임이 한창이다. 그 중심엔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을 둘러싼 논란이 있다. 생경한 이 용어는 켈리엔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이 써서 유명해졌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사상 최대 인파가 모였다고 말한 게 거짓으로 들통나자 콘웨이는 스파이서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대안적 사실'을 제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스파이서가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 본 사실을 얘기했다는 것이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에는 '대안'이 있을 수 없다. 사실에는 주관이나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 사상 첫 여성 편집국장을 지낸 질 에이브럼슨은 영국 가디언에 쓴 글에서 "켈리엔 콘웨이, 미안하지만 '대안적 사실'은 그저 거짓말일 뿐이야"라고 일갈했다.

콘웨이가 촉발한 논란은 조지 오웰이 1949년에 낸 소설 '1984'를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려놓았다. 콘웨이가 대안적 사실을 언급한 지난 1월22일부터 같은 달 26일까지 판매부수가 무려 9500% 이상 늘었다고 한다. 대안적 사실을 '1984' 속의 '뉴스피크'(Newspeak)에 빗대 비판하는 목소리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뉴스피크는 소설에 나오는 독재국가 오세아니아의 언어로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는 도구로 쓰인다. 도통 알아듣기 어려웠던 박 전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이 어쩌면 고도로 정제된 뉴스피크였는지 모른다.

사실, 진실에 어떻게 주관이 담길 수 있느냐고 하지만 우리는 이미 대안적 사실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당장 '박근혜 탄핵'을 외친 촛불집회와 '탄핵 반대'를 주장한 태극기집회만 해도 참가인원 셈법이 주체마다 달랐다. 집회 참가자 수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뻔한 사실이지만 반정부 시위 인원은 축소되고 친정부 시위의 규모는 부풀려지기 일쑤였다.

진짜든, 가짜든 사실 또는 진실이라고 포장하면 고스란히 믿기 쉽다. '가짜뉴스' 논란이 커지고 있는 이유다. 가짜뉴스가 생산해 유포하는 게 바로 그럴듯해 보이는 대안적 사실이다. 대안적 사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이들이 꾸며낸 거짓인데 이게 바로 박근혜가 말한 진실이다. 그의 진실을 밝혀줄 게 결국 가짜뉴스밖에 없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