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링크플레이션③(끝)/원가상승]'팜유·코코아값 급등'…식품업체 부담 가중
환율강세·이상기후에 원재료가 상승…수입 비용 증가 "원가 구조 효율화와 물류 공급망 혁신 등 꾀해야"
제조 원가 상승과 경기 불확실성을 이유로 가격 대신 용량·중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이 식품업계에 일상화되고 있다. 겉으로는 가격 변화를 최소화하는 듯 보이면서도 실질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돼 투명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프리미엄 전략을 내세운 기업들마저 구성 축소에 나서면서 브랜드 신뢰도와 가치 소비 흐름도 흔들리고 있다. 또한 이런 변화가 업계 전반의 기준가격을 왜곡시키고 장기적으로 시장 경쟁 질서를 흐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미국에서는 2023년 프랜차이즈 햄버거 회사인 버거킹이 광고 속 슈링크플레이션으로 소비자 집단소송을 맞기도 했다. 이번 기획은 슈링크플레이션의 실태와 소비자·업계·정책 당국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짚고 개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편집자주]
식품 업체들의 '슈링크플레이션'은 원재료 가격 상승 흐름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최근 곡물 등 식품 원재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완제품의 판매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요 원재료 가격 상승에 부담이 가중된 국내 식품업계들은 가격 인상을 단행하면서도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하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이에 슈링크플레이션과 같은 꼼수 가격 인상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26일 외신 가디언에 따르면 슈링크플레이션은 전세계 인플레이션 경기 속에서 여러 나라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최근 네스카페 오리지널 인스턴트 커피의 중량은 영국 테스코·모리슨·아스다 마트에서 200g에서 190g으로 줄었다. 이는 100g당 5% 가격 인상에 해당된다.
네슬레 관계자는 "다른 제조업자들과 마찬가지로, 네슬레는 커피 제조 비용의 상승을 겪고 있다"며 "이는 소매가격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코코아 가격 급등으로 초콜릿 판매가도 치솟았다. 퀄리티스트리트텁스는 모리슨 마트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중량을 600g에서 550g으로 줄였다. 이는 100ge당 27%의 가격 인상과 맞먹는다.
다이제스티브 비스킷으로 잘 알려진 맥비티의 클럽 비스킷과 펭귄 비스킷은 더 이상 초콜릿 비스킷으로 간주될 수 없을 정도로 코코아 비중이 줄어들고 팜오일·시어오일 비율이 높아졌다고 외신은 전한다.
한국도 꾸준한 물가 상승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근접한 가운데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소비자 체감 물가가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최근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미국산·호주산 소고기 수입 단가는 환율 강세로 전년대비 약 10%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과일류도 수입 비중이 큰 오렌지·레몬·자몽은 전년보다 약 5% 가격이 올랐고, 아몬드는 예상보다 부진한 작황과 고환율이 겹치며 국내 도입 단가가 약 30% 가까이 급등했다.
곡물 가격 상승도 가파르다. 밀가루 소비자물가지수는 2021년 12월 108.47(2020년=100)에서 2022년 12월 138.17로 크게 뛰었다. 2022년 2월 러-우 전쟁 발발 이후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한 여파다. 이후 이 지수는 2023년 12월 137.59, 지난해 12월 137.43, 지난달 135.33 등 130선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커피업계는 이상기후에 따른 작황 부진에 고환율이 겹쳐 원자재 가격이 급격히 오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FIS)에 따르면, 아라비카 커피 원두는 지난 20일 기준 미국 뉴욕 ICE 선물거래소에서 1톤당 8961.7달러에 거래되며 전년동기 대비 약 45% 상승했다.
원재료 가격 상승은 곧바로 국내 주요 식품업체들의 수입 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오리온의 올해 1~9월 원재료 매입액은 1조64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3.8% 늘었다. 같은기간 롯데웰푸드(1조4730억원)는 11.9%, 오뚜기(1조7522억원)는 10.1%, 농심(8545억원)은 4% 증가했다.
국내 주요 식품업체의 비용 증가에 영향을 준 주요 원재료는 팜유와 코코아 가격이다.
이들 원재료는 라면과 스낵, 제과류의 핵심 원료다. 라면·과자 제조에 쓰이는 국제 팜유 가격은 지난해 1~9월 1톤당 평균 930달러였다가 올해 같은 기간 1010달러선으로 약 8.1% 올랐고, 초콜릿의 원료가 되는 국제 코코아 가격은 지난해 1톤당 약 6800달러였던 시세가 올해 7300달러로 약 7.3% 뛰었다.
기상이변이 주요 원인이 됐다. 엘니뇨 현상 등 이상 기후로 팜유 주요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공급량이 줄었고, 코코아 역시 주산지인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의 작황 부진으로 공급난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환율과 원가 압박 속에 식품업체들은 가격 인상 부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소비자의 반발을 최소화하려면 원가 구조 효율화와 대체 원료 개발, 원재료 공급처 다변화, 물류 공급망 혁신 등을 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현정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