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링크플레이션①/치킨]'꼼수' 중량 축소 되돌리더니…이번엔 '이중가격제'

가격만 올리고 중량 표시 없는 경우도…소비자 알권리 무시 대형 브랜드 '시장 가격 형성자' 역할…가격 인상 신중해야

2025-11-24     김현정 기자
사진=챗GPT

제조 원가 상승과 경기 불확실성을 이유로 가격 대신 용량·중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이 식품업계에 일상화되고 있다. 겉으로는 가격 변화를 최소화하는 듯 보이면서도 실질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돼 투명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프리미엄 전략을 내세운 기업들마저 구성 축소에 나서면서 브랜드 신뢰도와 가치 소비 흐름도 흔들리고 있다. 또한 이런 변화가 업계 전반의 기준가격을 왜곡시키고 장기적으로 시장 경쟁 질서를 흐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미국에서는 2023년 프랜차이즈 햄버거 회사인 버거킹이 광고 속 슈링크플레이션으로 소비자 집단소송을 맞기도 했다. 이번 기획은 슈링크플레이션의 실태와 소비자·업계·정책 당국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짚고 개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편집자주]

서울에 사는 40대 직장인 A씨는 얼마 전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즐겨 먹던 '떡갈비'를 오랜만에 사곤 깜짝 놀랐다. 가격은 동일한데 중량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A씨는 "물가가 오른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자주 사먹는 식품에서 체감하니 당황스럽다"며 "사실상 가격이 오른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수년 전 미국 어린이 TV프로그램에서 쿠키몬스터 캐릭터가 "쿠키가 점점 작아지고 있어요. 이제 쿠키를 두 배로 먹어야 할 것 같아요"라며 올린 X(옛 트위터) 계정 글을 연상시키는 사례다.

최근 교촌치킨이 순살 메뉴의 조리 전 중량을 축소해 '슈링크플레이션'(가격을 유지·인상하면서 제품 크기·수량을 줄여 사실상 가격을 올리는 효과를 얻는 것) 논란이 일었는데, 대형 브랜드뿐만 아니라 일반 백화점·마트 식품 코너에서도 이같은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24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식품물가지수는 전년동기 대비 3% 상승했다. 

품목별로 보면 채소는 전년동기 대비 14.1% 하락했지만 곡물이 무려 21.8% 치솟았고 과실도 10.9% 올랐다. 축산물과 수산물이 5%대 상승을 보였고 가공식품도 3.5% 올랐다.

전반적인 물가 상승에도 제품 가격 인상에 눈치보기로 대응하던 식품업체들은 꼼수 전략을 취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교촌치킨은 지난 9월 순살 메뉴를 일괄 손보면서 조리 전 중량을 700g에서 500g으로 줄여 '꼼수 중량 축소'란 비판을 받았다. 중량 감소로 가격 인상 효과를 보는 '슈링크플레이션'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기존 닭다리살로만 이뤄졌던 원육 구성도 안심살을 혼합함으로써 원재료 함량을 줄이는 '스킴플레이션'을 적용했다.

이에 송종화 교촌에프앤비 대표이사 부회장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불려가 질책을 받았다. 이후 교촌치킨은 "메뉴 개편 과정에서 고객과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며 간장순살과 레드순살, 반반순살 등 메뉴의 중량과 원육 구성을 기존으로 되돌리기로 했다.

그러나 이달 중순 서울 지역 일부 교촌치킨 매장이 배달앱에서 순살 메뉴 판매 가격을 기존 2만3000원에서 2만5000원으로 2000원씩 올린 것이 확인되면서 '슈링크플레이션' 논란이 또 다시 불거졌다. 매장 판매가에는 변동이 없다.

가맹점주들은 이번 가격 인상이 순살 중량 원상복구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과 배달수수료 부담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달 말부터는 교촌치킨의 이같은 이중가격제가 확산돼 서울 전역 배달앱 순살 메뉴 가격이 일괄 2000원씩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교촌에프앤비 관계자는 "배달앱 가격 인상은 일부 가맹점주들의 자율적인 선택"이라며 "배달앱 가격 책정과 관련해서는 본사가 관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요 프랜차이즈들은 배달앱 수수료를 이유로 배달앱에서 판매 가격을 더 비싸게 받는 경우가 많다. 맥도날드 빅맥세트는 매장에서는 7200원이지만 배달 주문 시에는 8500원에 판매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에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는 배달앱 수수료가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프랜차이즈들은 자사앱을 통한 배달 서비스 활성화로 배달수수료 부담을 덜어내려는 시도도 경주 중이다.

그럼에도 교촌치킨의 이같은 꼼수 행보는 과도한 가격 인상일뿐더러,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고객 신뢰를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기도 오산시의 교육 및 R&D센터 정구관(교촌 아카데미) 내 브랜드 체험관에서 열린 '교촌1991 소비자 캠프'에서 참여자들이 양념을 일일이 치킨에 붓으로 바르고 있다. 양념 붓질은 교촌치킨의 독특한 조리법으로 브랜드 시그니처로 여겨진다. 교촌치킨은 최근 일부 메뉴의 조리 방식을 붓질에서 텀블링(치킨을 양념에 버무리는 것)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붓질 도포로 되돌리겠다고 공식화했다. / 사진=교촌치킨

허니순살의 경우, 2019년 출시 당시 2만원에 가격이 책정됐는데 최근 일부 매장에서 2만5000원으로 올리면서 출시 6년 만에 가격이 약 25% 상승했다. 2016년 대비 올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약 16%인 점을 고려하면, 가격 인상폭이 소비자물가 상승폭을 9%포인트가량 웃돈다.

게다가 지금까지 '프리미엄 치킨'의 브랜드 이미지를 고수해 온 교촌치킨이 원육 구성과 조리 중량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면서 충성도 높은 고객과의 신뢰를 저버렸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좋은 원육'과 '정성스러운 조리'라는 교촌의 프리미엄 이미지는 이번 조치로 깨졌다"며 "브랜드 정체성에도 타격을 줄 것"이라고 짚었다.

이후 기존 원육 구성과 조리법으로 돌아간다는 발표를 했지만, 이번엔 아예 노골적으로 이중가격 인상 흐름에 올라타면서 '꼼수 인상'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교촌치킨과 같은 대형 브랜드는 전체 치킨 시장의 가격 평균을 결정하는 시장 가격 형성자 역할을 한다"며 "이런 기업이 가격을 올리면 업계 전반의 가격 기준을 동반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어 가격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중가격제 시행 이후 음식 자체 가격이 올라 소비자 부담이 느는 상황을 겪고 있다"며 "소비자와 자영업자들 간의 커지는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전했다.

사진=bhc

한편, 그나마 교촌치킨과 BHC 정도만 치킨 중량을 배달앱이나 홈페이지에 고지할 뿐, 대부분 치킨 프랜차이즈는 아예 중량 표시를 어디에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 알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최근 시장 점유율 상위 7개 치킨 프랜차이즈를 대상으로 가격·중량 표시 현황을 지난달 23~31일, 이달 11~12일 두 차례에 걸쳐 조사한 결과, 교촌치킨과 BHC를 제외한 5개 브랜드는 배달앱과 홈페이지에서 중량 표시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치킨 중량은 브랜드별은 물론 동일 매장의 동일 제품 간에도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먼저 후라이드 치킨의 평균 중량은 780.9g이었다. 이중 교촌치킨은 평균 684.5g으로 가장 가벼웠고, BHC는 852.5g으로 가장 무거웠다.

순살 메뉴는 편차가 더 커, 네네치킨 '오리엔탈파닭 순살'이 평균 1102.9g으로 가장 무거웠고 BHC '뿌링클 순살'이 527.4g으로 가장 가벼웠다.

동일 매장에서 동일 메뉴를 두 번 구매해 비교했을 때 후라이드는 평균 55.4g 차이가 발생했다. 브랜드별로는 BHC가 183.6g(19.4%)으로 격차가 가장 컸다. 순살 제품은 평균 68.7g 차이를 보였고, BBQ '황금올리브 양념 순살'은 무려 243.8g(30.6%) 차이가 났다.

협의회는 "프랜차이즈 대부분이 10호 닭을 사용한다고 가정할 때, 동일 매장에서 동일 제품의 중량 편차가 이 정도로 크다는 것은 관리 기준이 불명확한 것"이라며 "소비자가 기본적으로 확인해야 할 중량을 투명하게 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협의회는 "치킨 패스트푸드 업체는 이미 g 단위 제공량을 명확히 표기하고 있다"며 "조리 후 제품 중량 편차가 큰 만큼, 현재의 '조리 전 중량' 공개만으로는 정확한 정보 제공이라 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반면에 일부 업체 측에서는 조리 전후 중량 차이가 커지므로 정확한 중량 수치를 고지하기 어렵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협의회는 "정확한 중량 표시는 소비자 신뢰 확보의 최소 조건"이라며 "정부가 논의 중인 치킨 중량 표시 의무화 제도는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현정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