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 놓쳐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도 막기 어려워져

올해 강북권 최고 청약률과 최다 청약을 기록한 '신촌숲 아이파크' 모델하우스 전경. 모델하우스에 들어가기 위해 방문객들이 줄을 서고 있는 모습.

“저금리 시대에 부동산 말고 돈이 어디로 가겠어요? 청약통장 하나면 있으면 앉은 자리서 수천만원을 벌 수 있는데, 강남 재건축이 막히면 강북으로 눈을 돌리면 되죠. 강남도 규제한다니 잠깐 시장이 가라앉은 거고 결국 다 회복할거에요.” (마포 신수동 A부동산 대표)

서울 강남에서 시작된 부동산시장 과열현상이 빠른 속도로 강북을 거쳐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규제 얘기에 강남 재건축시장은 관망세로 돌아섰지만 초장에 투기열풍을 잡지 못한 바람에 다른 지역으로까지 불길이 옮겨 붙은 것이다. 그나마 강남 재건축도 숨고르기에 들어갔을 뿐, 다시 상승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역별 최고 경쟁률-최다 청약 기록, 매주 갱신

26일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서 1순위 청약을 진행한 ‘신촌숲 아이파크’는 395가구(특별공급분 제외, 이하 동일) 모집에 2만9545명이 접수해 평균 74.8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올해 강북권 가장 높은 청약률이다.

특히 신촌숲 아이파크는 전용면적 59㎡ 분양가를 6억원대 중반으로 책정해 주변 시세보다 과도하게 비싸다는 지적에도 A타입이 당해(서울)에서 177.7대 1로 마감, 강남 재건축 아파트 못지않은 경쟁률을 나타냈다.

실제, ‘신촌숲 아이파크’가 모은 1순위 통장 2만9545개는 ‘고덕 그라시움’ 3만6017개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 ‘고덕 그라시움’의 일반분양 가구수가 1621가구였던 것과 비교하면 청약자들의 엄청난 관심이 집중됐음을 알 수 있다.

같은 날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1순위 청약을 받은 ‘힐스테이트 레이크 송도2차’는 741가구 공급분에 9236명이 청약, 평균 12.5대 1로 마감했다. 전 가구가 전용면적 84㎡ 이상 중대형으로만 구성됐음에도 최근 5년간 이 지역 분양 단지 중 최고 청약률과 최다 청약을 기록했다.

앞서 경기도 안산에서 청약을 받은 ‘그랑시티자이’도 1회차와 2회차에서 각각 1만5390건과 1만6348건의 1순위 통장이 접수됐다. 안산에서 공급된 단지 중 1순위 청약자가 1만 명이 넘게 몰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 최다 청약 기록 2403건의 6배가 넘는다.

한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예전에 강남에서나 나올법한 청약 기록들이 요즘에는 주간 단위로 각 지역별로 갱신된다”며 “분양을 업으로 하는 입장에서 분양이 잘 되니 좋기야 하지만 이러다 갑자기 뭔가 터질 것 같아 무섭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투기수요, 정부가 규제 의지 없다 판단하고 非강남권 이동

이처럼 수도권 전역에 분양열풍이 닥친 데는 정부가 부동산시장 규제 타이밍을 놓친 사이 투자자들이 정부 '관심 지역'인 강남 재건축에서 '관심 밖 지역'인 강북·수도권으로 대거 갈아탔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난 8·25 가계부채대책을 통해 ‘분양권 전매제한 강화’와 같은 강력한 규제를 시행, 초장에 시장과열을 잡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당시 정부는 돈줄을 죄고, 공급과잉 이슈를 막기 위해 주택공급 속도를 조절하는 방안만 제시했다.

장경철 부동산일번가 이사는 “8·25대책에서 정부가 부동산시장을 잡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으면 반포·개포에서 시작된 분양열풍이 지금처럼 확산되진 않았을 것”이라며 “부동산경기를 꺼뜨리지 않겠다는 정부의 속내를 투자자들이 읽으면서 일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실제, 8·25대책 발표 후 강남 재건축단지들은 3.3㎡당 4000만원을 전후한 고분양가를 책정하고도 최고 청약률에 1억원이 넘는 초기 프리미엄을 기록했다. 또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역대 최고 수준을 보이고, 10년 만에 가장 높은 주간 상승률을 나타내는 등 과열이 심화됐다.

이에 정부가 추가 대책을 검토하겠다는 운을 띄었지만 열흘이 지나도록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달 말이나 내달 초 중 규제 내용과 대상 지역을 발표할 것이라는 일부 보도에도 국토부는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정부가 강남권을 규제할 경우 시장이 냉각될 것을 우려해 머뭇머뭇한 사이 강북·수도권까지 투기수요가 번졌다”며 “애초에 재빨리 강남권만 잡았으면 될 것을, 이제 수도권 전역에 칼을 대야 할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책 발표가 늦어지면서 관망세로 접어든 강남에서 다시 ‘불패론’이 흘러나온다는 데 있다. 정부의 타깃이 된 만큼, 일주일 새 주요 재건축단지들의 매매가가 5000만~6000만원씩 떨어졌지만 조만간 회복될 것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잠실동 G부동산 관계자는 “잠실5단지는 50층 초고층 재건축 계획에 따라 올 들어서만 2억원 정도 올랐다”며 “안 그래도 상승 피로감이 있던 터에 규제 얘기까지 나오며 주춤할 뿐 대세 상승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개포동의 K부동산 대표도 “아무리 규제를 해도 강남은 결국 오르지 않았느냐”며 “더군다나 현재 경제를 떠받들고 있는 게 부동산뿐인데 정부가 손을 대기 어렵다는 생각에, 매도인과 매수인 모두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본부장은 “저금리로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며 나타난 게 지금의 과열 현상인데 사실 어떤 대책을 내놓더라도 백약이 무효할 것”이라며 “금리를 올리지 않는 부동산 규제는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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