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새로이 적금을 붓고자 소비자들 사이에서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는 상품들을 열심히 검색해봤다. 최근 하향곡선을 이어온 금리상황은 아는 터. 당연지사 짭짤한 이자 수완을 기대한 건 아니고, 지출을 조금이나마 줄이며 저축액을 늘려보자는 데 의의를 둔 것이었다.

직장인 우대 상품 위주로 찾아보던 기자는 초저금리 시대 속 그나마 높은 이율을 적용하는 적금을 몇 개 발견했다. 그중 하나는 앞서 계좌를 개설한 적이 있는 곳의 상품이었다. 옳다구나 싶어 당행으로 발걸음을 향했으나 기자는 직원으로부터 사용했던 상품이 폐지돼 현재 계좌 이용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통장을 또다시 만들어야 한다길래 전산망에 기자의 개인정보와 과거 이용실적 등이 있을 테니 신분증만 제시해도 되느냐 물었는데, 은행원은 그럼에도 나역시 급여 명세표와 같은 재직 증명서류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4년부터 계좌 개설 요건을 점차 강화해왔다. 작년 3월 이래로는 신규계좌 개설 시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금융거래목적확인서 제출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계좌를 만들 때는 개설 목적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만한 서류를 제출해야 하며, 해당 서류를 구비할 수 없다면 금융기관에서 개설을 거부할 수 있게 됐다. 신분증과 도장만 가져가면 손쉽게 통장을 만들던 일전과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통장고시’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난 까닭이다.

기자의 경우에야 이후 회사를 통해 재직증명서를 뗀 뒤 어려움 없이 계좌를 개설할 수 있었으나 대학생이나 일용직 근로자 등은 서류 제출 절차가 까다로워 개설에 고충을 겪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이로 인해 소비자 일선에서는 은행들이 대포통장을 근절한다는 명분으로 통장개설 시 요구하는 서류가 너무 많고 까다로워 헛걸음치기 일쑤라는 토로가 나온다. 금융소비자연맹에서도 “은행들이 대포통장을 막는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전가시켰다”며 반기를 든 바 있다.

그러나 추가 증빙서류 제출로 인한 대포통장 감소 효과를 부정할 수는 없다. 지난 2014년 하반기 5만3942건에 달하던 대포통장 발생 건수는 올해 상반기 2만1555건까지 줄었다.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도 같은 기간 월평균 337억원에서 123억원까지 감소했다. 대포통장의 폐단이 사회적으로 심각해 계좌 개설 복잡화 등과 같이 예방수준을 높이는 게 크게 문제 될 것 없다는 견해가 부정적 여론에 팽팽히 맞설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다.

다만 금융당국의 대포통장 근절책이 신설 계좌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과거 개설된 통장들이 대포통장으로 이용되는 사례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게 회사 급여 통장이 아닐까. 나만 해도 타사에서 근무할 당시 회사로부터 급여를 명목으로 특정 은행 계좌 개설을 요구받은 일례가 있다. 회사마다 주거래 은행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곳의 급여 통장이 필요했다.

내 주변에 회사를 수차례 옮긴 사람들의 경우에도 만들어 놓고 잠들어 있는 급여 통장이 상당수라고 말한다. ‘공돈 마련을 위해 노는 통장을 넘겨볼까’ 하는 이들이 으레 있는데 웃으며 넘길 일이 아니다. 실제 다수 온라인 사이트를 보더라도 잠들어 있는 계좌를 악용하는 사례를 빈번하게 볼 수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계좌 개설 후 5일 이내' 대포통장으로 이용되는 계좌의 비중은 4.9%로 전년(12.8%) 대비 7.9%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계좌 개설 후 1년을 초과’해 대포통장으로 이용되는 계좌의 비중은 63.3%로 전년(55.7%)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7.6%포인트)했다. 신규 계좌 개설 시 금융거래목적 확인 등 심사 기준이 강화되자 신규 계좌 대신에 장기간 사용하던 기존 계좌를 모집해 대포통장으로 이용하는 실례가 많아진 것이다.

금융당국의 엄포에도 여전히 각종 온라인 사이트 내에는 ‘대포통장 삽니다’라는 내용의 글들이 즐비하다. 범죄에 숱하게 악용되는 대포통장 개설에 본인도 모르게 가담해 피해를 보는 소비자들을 위한 예방지침의 홍보도 활발하게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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