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1조5천억 vs.국민연금 1200억 손실..누구 상처가 더 아플까

한미약품의 늑장 공시가 논란이다. 지난달 29일 1조원 규모 표적항암제 기술 수출(호재) 소식을 공시한 다음날(30일) 오전 9시 30분경 베링거인겔하임사와의 8000억원대 계약 해지(악재) 건을 공시한 때문이다.

회사측은 “거래소 공시시스템이 마감된 이후인 29일 오후 7시가 넘어 계약 해지 사실을 통보받았다”며 “다음날 오전 서둘러 관련 소식을 공시하려 했으나 문구 조정 등 절차적 문제로 장이 열린 이후에야 공시하게 됐다”고 해명하며 진화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한미약품에 6만여 주에 달하는 공매도 물량이 악재 공시 직전에야 쏟아져 나왔고, 주가 역시 지난달 29일 종가 62만원에서 이달 6일 45만500원으로 나흘 만에 27.3%가 빠지면서 개미 투자자들의 손실이 현실화된 것이다. 제로섬 룰이 적용되는 주식시장에서 국민연금을 포함한 개미투자자가 대규모 손실을 입은 반면 다른 한쪽은 그만큼 대규모 이익을 봤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한미약품에서만 평가손실액이 이미 1260억원에 달한 국민연금은 성급하게 손해배상소송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국내 최대 큰손이란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은 결정이다. 다른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자들의 연쇄 소송 역시 불 보듯 뻔하다.

투자자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거래소와 감독당국은 뒤늦게 내부자거래 등 불공정행위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사를 벌이면서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 건으로 한미약품 대주주인 임성기 회장의 이미지 역시 크게 훼손됐다. 임 회장은 지난해 주가가 8배가량 오르자 올 연초 전직원에게 1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규모의 주식을 포함한 성과급을 무상증여했다. 2015년 연초 한미약품 주가는 10만원대 초반이었으나 이후 신약 개발 효과 등에 따른 실적 개선이 가시화되면서 연말 80만원대 후반까지 치솟았다. 임 회장이 전 직원에게 통 큰 선물을 준 배경이다.

임 회장의 이 같은 선물 이후 그는 모든 샐러리맨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우뚝 솟았다. 그러나 이번 건으로 그의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파렴치범으로 급추락했다. 임 회장의 도덕성 시비는 감독당국의 향후 조사 결과가 나와야 가닥을 잡을 전망이다.

이번 건으로 임 회장의 주식 평가손실예상액은 이미 1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임 회장은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66.49%(3876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주가는 지난달 30일 종가 13만 9500원에서 이달 6일 9만8700원으로 거래를 마감하면서 나흘새 29.3% 추락했다. 한미사이언스는 한미약품 주식 431만7100주(41.37%)를 보유하고 있다.

인간행태심리학자에 따르면 이번 건은 어쩌면 불가항력적이었을 수 있다.

‘두 가지 뉴스가 있어. 좋은 소식부터 먼저 들을래? 아니면 나쁜 소식부터 전할까?’

이 질문에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지를 고를 것 같은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소식을 먼저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분석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나쁜 소식을 잘 전달하지 않으려 한다. 이를 ‘함구효과(Mum effect)’라 한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그 정보가 당사자의 개인적 약점, 무능에 관한 것이거나 설령 자신과 무관한 이야기라도 전달하려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나쁜 메시지가 만들어내는 부정적 감정 때문인데, 나쁜 뉴스를 전달하는 행위와 자신이 연관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심리적 기저현상에 기인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일반적으로 좋은 소식은 윗사람이 빨리 보고받을 수 있지만, 나쁜 소식은 가장 늦은 시간에 전달된다. 심지어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이번 뉴스 역시 대주주인 임 회장에게 보고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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