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프랑스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는 “인구는 운명”이라고 했다. 인구는 거부할 수 없는 도도한 물결처럼 경제의 강력한 기제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인구는 한나라 경제의 펀드멘탈이다. 인구가 늘어나지 않고서는 장기적으로 집값도, 땅값도 계속 오를 수 없다. 인구는 유효수요를 측정하는 가장 신뢰도 높은 도구이다.

이처럼 인구가 부동산시장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인구 고령화·저출산에서 촉발될 인구쇼크는 미래 우리경제를 짓누르는 중대한 위협이다. 다만, 인구 쇼크가 현실화에 대한 ‘시점(time)’과 ‘강도(strength)’에서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부동산시장에 미칠 인구 쇼크에 대해서는 2가지 오류만 지적하고 싶다.

첫째, 먼 미래를 보는 망원경을 돋보기로 쓰는 오류이다. 망원경을 돋보기로 보게 되면 사물이 잘 안 보일 것이다. 자칫 자신이 보고 싶은대로 보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인구는 초장기 시계열이다.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모두 인구 잣대로만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가령 2012년 수도권에서 하우스푸어 사태가 터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일본식 부동산 붕괴를 떠올렸다.

하지만 고령화·저출산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주택공급의 과잉, 수도권 거주자의 지방(혁신도시, 세종시)이전으로 생긴 수요공백의 문제였다. 사람들은 집값이 급락세를 보이면 일본 버블붕괴 방식으로 시장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그러나 아직은 먼 미래의 결과에 맞춰 원인을 도출할 경우 아전인수식 해석에 빠질 위험성이 크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장기라는 것은 현재의 일들을 자칫 오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일본화의 큰 흐름은 받아들일 수 밖에는 없다. 하지만 옆집 불난 듯 호들갑 떨지는 말라. 혹시 20~30년 뒤에 일어날 일을 2~3년 뒤에 곧 닥칠 것처럼 조급증에 빠지는 말자는 얘기다.

둘째, 인구론의 또 다른 맹점은 지나친 공포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고령화·저출산의 위기는 언젠가는 우리 앞에 심각하게 닥칠 것이다.인구 위기는 새벽 안개 같은 존재다. 새벽 안개에 오랫동안 노출돼 있으면 옷이 젖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령화·저출산의 위기는 우리 경제를 서서히 옥죌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새벽 안개와 소낙비를 구분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구 위기를 단기간에 확 쏟아지는 소낙비로 생각한다. 인구만 얘기를 꺼내면 세상이 금세 끝날 것처럼 침울해진다. 인구론은 인식의 오류 전시장이다.

요즘 전문가들까지도 ‘인구감소 시대’라는 말을 벌써 꺼낸다. 우리나라 총인구는 앞으로도 2030년까지 늘어나는 데도 말이다. 물론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는 2017년부터 줄어든다. 한창 일할 사람들이 줄어들면 경제 체력은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총인구가 늘어나는 한, 부동산가격이 인구요인에 의해서 갑자기 붕괴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보다 훨씬 빨리 고령사회를 경험한 스웨덴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최근 집값이 크게 올랐다. 인구요인보다 마이너스 금리 효과 때문이다. 이처럼 인구는 부동산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일 뿐이다. 그런데도 인구에 너무 집착하는 오류를 범한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지리적으로 너무 가까운 탓이다.

문제는 평범한 사람이 인구 위기에서 나홀로 탈출할 방법이 있겠느냐는 점이다. 방법을 안다고 하더라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인구 쇼크를 피하기 위해 젊은 인구가 많은 베트남 등 동남아로 이민을 갈 수 도 없지 않은가. 대부분 이런 저런 걱정을 하면서 지금 거주지에서 꾸역꾸역 살아갈 것이다.

역사의 큰 흐름 앞에서는 소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이 의외로 많지 않다. 한국에 살면서 인구쇼크로부터 벗어나겠다는 것은 폭풍우가 치는 한강다리를 걸으면서 ‘우산을 썼으니 비를 안 맞겠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일부 비를 덜 맞을 뿐이지 완전히 폭풍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잘 구분하는 것도 현명한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마음을 접는 게 속이 편하다. 실현 불가능한 이상론보다는 차라리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게 나을 것이다. 이민을 가지 않을 계획이라면 인구 쇼크를 덜 받는 도심 중심으로 부동산 자산을 재설계하는 방법도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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