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가상 세계 경계 붕괴…'포켓몬고 생태계' 어디까지

‘포켓몬고’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기세다. 증강현실 기반 모바일 게임이라는데 직접 해보지 않고는 알듯 말듯 하다.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은 진짜 이미지나 배경에 3차원 가상 이미지를 입히는 기술이다. 진짜와 가짜를 하나로 합쳤다고 해서 ‘혼합현실’(MR·mixed reality)이라고도 한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특수렌즈를 끼고 허공에 뜬 스크린과 키보드를 조작하는 게 바로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한 것이다.

증강현실이 최첨단 기술이라면 ‘주머니 속 괴물’ 포켓몬은 20년 넘은 구닥다리다. 일본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의 소프트웨어로 1996년 2월에 첫선을 보였다. 자기 포켓몬을 키우면서 다른 포켓몬과 대결해 수준을 높이는 방식의 게임으로 인기가 대단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이 1999년 포켓몬 대표 캐릭터인 ‘피카추’를 ‘올해의 인물’로 꼽았을 정도다. 포켓몬의 인기는 게임기의 진화와 애니메이션, 영화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이어졌다. 1세대 151개였던 포켓몬 캐릭터는 현재 720여개에 이른다.

스마트폰 화면 내 실제 세계에 증강현실로 나타난 포켓몬 / 자료출처: 포켓몬고 웹사이트

포켓몬은 급기야 스마트폰 화면의 증강현실로 들어왔다. 스마트폰 구글지도에 표시된 곳을 찾아가 스마트폰 카메라를 비추면 화면에 포켓몬이 나타난다. 보물찾기와 비슷하다. ‘포켓스톱’에선 포켓몬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아이템을 구할 수 있고 ‘포켓몬 체육관’에서는 포켓몬끼리 대결을 펼칠 수 있다. 게임기 속의 가상 세계를 모두 실제 세계로 불러들인 셈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개발사의 서버가 마비될 정도였다. 포켓몬고는 미국·호주·뉴질랜드에서 지난 6일 처음 출시됐지만 이미 실제 사용자수와 이용시간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제쳤다. 닌텐도는 포켓몬고 출시 이후 1주일여 만에 주가가 90% 폭등했다. 시가총액이 단번에 소니 수준이 되면서 일본의 20대 기업으로 부상했다.

포켓몬고 광풍에 사건·사고도 잇따랐다. 스마트폰에 빠진 포켓몬 사냥꾼들의 부주의로 교통사고와 추락사고, 고립사고 등이 많았다. 미국 와이오밍에선 한 남성이 포켓몬을 찾다가 강에서 시체를 발견하기도 했다.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포켓스톱이 강도 등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포켓몬고가 정식 출시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속초가 포켓몬 성지로 떠올라 연일 화제다.

포켓몬고 광풍이 반짝 유행에 그칠 것 같진 않다. 20년간 공들인 캐릭터의 힘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포켓몬고가 전 세계를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데 불과 1주일밖에 안 걸렸지만 하룻밤 사이의 성공은 사실 20년에 걸쳐 이룬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뉴질랜드의 한 남성이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전문 포켓몬 사냥꾼이 됐다는 사연을 전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무궁무진한 기회가 창출됐다고 지적한다. 포켓몬고는 우선 ‘게임’의 통념을 바꿨다. 게임은 원래 폐쇄적이다. 온라인으로 여럿이 함께 즐겨도 결국 방에서 혼자 하는 게 게임이었다. 골방에 틀어박힌 '게임 폐인'을 떠올려 보라. 그러나 포켓몬고는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냈다. 이들은 사냥감이나 아이템 등을 놓고 소통하고 한 장소에 모인다. 소셜미디어 이상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수익모델도 긍정적이다. 포켓몬고 게임 앱은 공짜지만 포켓몬을 키우려면 유료 아이템을 사야 한다. 무료와 유료를 섞은 ‘프리미엄’(freemium) 전략이다. 유료 아이템은 실제 세계에 있는 포켓스톱에서 산다. 포켓스톱으로 지정되면 홍보 효과를 볼 수 있다. 포켓몬고엔 또 다른 수익원이 된다. 포켓스톱이 된 가게들도 이미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목적지가 같은 포켓몬 사냥꾼들을 위한 차량공유서비스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포켓몬고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접점에 들어서기 시작한 세상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닌텐도 주가 추이(15일 종가 2만7780엔) / 자료출처: 구글파이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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