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우리가 일본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이미지는 뭐가 있을까.

국내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이미지는 ‘인구 고령화’와 ‘부동산 거품 붕괴’가 아닌가 싶다. 이런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보니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이 이웃의 일본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일본화(Japanization)’에 대한 걱정이 많다.

그 근거로 우리나라의 인구구조나 산업구조가 일본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거론한다. 나중에 그 전망이 틀리든 맞든 관계없이 우리나라 부동산을 바위덩어리처럼 짓누르고 있는 심리적인 밑바탕에는 바로 우리가 일본처럼 될지 모른다는 집단적 두려움이다. 신도시 몰락론에서 최근 젊은 층의 전세 눌러앉기 현상까지 일본화의 유령이 한국 부동산시장을 떠돌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일본이 우리나라 부동산의 미래일까.

누구나 미래는 두렵다. 불안한 미래에 뭔가 붙잡고 싶은 게 인간들의 심리다. 그래서 불안 공포를 팔아먹는 돈벌이가 성행을 한다. 이른바 ‘공포 비즈니스’로 악용되는 것이다. 대폭락이니 붕괴, 종말 같은 공포를 유발하는 예언서들이 잘 팔리는 것은 인간의 불안심리를 파고든 때문이다.

한국 부동산이 일본처럼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최근 전세난의 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일본처럼 집값이 폭락할 텐데, 집을 왜 사느냐”는 것이다. 일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집을 사는 것은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한 투자행위이고 전세로 사는 것이 최고의 재테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세살이를 일종의 안전자산 구매행위로 판단하는 것인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다. 부동산 저성장시대에 투자자산으로 집을 사는 것은 인생의 필수가 아니라 선택일 뿐이다. 자신의 경제사정을 감안해서 알아서 구매 여부를 결정할 일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일본 부동산의 극단적인 종말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나 공포를 경계하자는 것이다. 가령 우리보다 고령화가 심한 스웨덴 등 북유럽에서는 마이너스 금리가 도입되면서 지난해 아파트 값이 폭등했다. 인구 쇼크보다 금리 쇼크를 받는 셈이다.

미래의 전망은 당위보다는 확률적이고 통계적인 사고가 미덕이다. 시장이 합리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영원한 비관론자(Permabear)’나, ‘근거 없는 낙천주의자(Panglossian)’가 각광을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적 엄밀성이 떨어진 단순화의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1차원 방정식보다는 다차원 방정식에서 움직인다. 한쪽 변수를 과대 포장하면 극단론이 등장한다.

미국의 경영컨설턴트인 윌리엄 서든은 “소설로 포장된 충격요법은 즐거움을 주지만, 이것이 과학적 사실로 포장될 때 불필요한 불안감만 준다”고 했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논리들은 정서적인 카타르시스는 될 수 있으나 지혜로운 솔루션이 되지 못한다. 무책임한 말들은 오히려 불안만 유도할 뿐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펼치는 ‘무당 경제학(Voodoo economics)’이 될 수 있다.

양극단을 강요하는 시대에 중용의 미덕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쪽으로 쏠리기보다 여러 변수를 종합해서 객관과 균형의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시장을 제대로 보는 안목이 생긴다. 미래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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