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이기주의가 낳은 수십년 해묵은 규제..‘건설산업통합법’으로 일원화 필요

건설업계 내에서 분리발주를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공의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게 대표적 이유다. 하자책임을 분명히 할 수 없다는 점과 건설근로자를 보호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 전기·정보통신·소방·문화재사업은 개별법 적용

표준산업분류에 따르면 △전기공사업(전기공사업법·산업통상자원부) △정보통신공사업(정보통신공사업법·미래창조과학부) △소방시설공사업(소방시설공사업법·국민안전처) △문화재수리업(문화재청) 등은 건설업역에서 제외된다. 일반적으로 건설산업은 건설산업기본법의 적용을 받지만 이들은 개별법에 따라 업종이 구분된다.

앞서 열거한 업종이 산업통산자원부 등 타 부처 관할로 이관된 데는 ‘해당 산업의 육성 및 발전’이라는 명목이 컸다. 그러나 이같은 산업의 건설업 배제는 산업의 발전이 아닌 업역다툼만을 야기했을 뿐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해당부처의 보호주의적 정책으로 인해 시장은 세분화되고 영세·소규모 중소업체 위주로 재편됐다는 게 건설업계 내의 평가다.

◇ 공사비용·기간↑..‘비효율’ 초래

개별법에 따른 업종 구분으로 비롯된 큰 문제가 분리발주 의무화다.

전기공사업법과 정보통신공사업법에 의거, 건설공사에 수반되는 전기·정보통신 분야는 분리발주가 의무다. 의무화로 인해 해당면허가 있더라도 공사를 함께 도급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발주자의 업무가 증가하고 예산이 낭비되는 등 공사수행상에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미국국립경제연구소(NBER)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추정가격 400억원 공사의 공종별 분리발주 시 공사비가 45억2000만원(16%)가량 오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분리발주 시 평균 8%의 비용이 상승하고 2배 이상 공사기간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유사한 건설활동에 대한 복잡하고 수많은 규제로 기업의 경영부담은 지속해서 가중되는 판국이다.

일례로 건설산업기본법에 의한 토목, 건축 등 종합건설업의 등록만으로 하나의 시설물 건설공사를 수주할 수 없다. 개별법에서 요구하는 업종을 추가등록해야 한다.

시설물 건설에 필요한 각종 인허가·신고 등의 행정업무와 시공관리에 관한 규제도 서로 다른 법률에서 소관부처별로 각각 진행된다.

공종별 하도급 규제도 업종별로 차이가 있는 데다 유사한 상황에 대해 중복규제하는 부분도 있어 업체들의 업무상 혼란이 크다고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토로한다.

◇ 시공업체간 책임한계 불분명..발주자 부담 증가

하자책임 불분명 역시 난제로 꼽힌다. 분리발주를 할 경우 업체간 현장조직과 관리체계가 나뉘어 종합적인 계획·관리·조정이 힘든 탓이다. 이 경우 시공업체간 동일구조물 공사에 대한 책임한계를 명확히 하기가 어려워진다. 전문공종별 분리발주가 이뤄질 경우 사고발생 시 부실 또는 책임의 원인 규명이 곤란하다. 하자 발생 시 상호 책임전가로 하자보수의 지연을 초래하기도 한다.

지난 2010년 1월 인천에 소재한 대정초등학교 다목적강당은 준공 직후 화재로 전소했다. 강당 증축공사를 분리발주해 최정 준공검사까지 마쳤으나 불과 20여일 만에 사용되지도 못하고 불타버렸다.

화재원인은 불분명했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화재감식 및 경찰청 수사 결과 비상 조명등 전선이 단락돼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당시 언론은 보도했다. 이에 공사 발주기관이었던 인천 북부교육청은 소방공사업체에 구상권을 청구했다.

그러나 시공은 건축, 소방설비, 전기설비, 정보통신설비, 기계설비 등 각 공종별로 분리발주됐으며 준공검사까지 마친 터였다. 따라서 발주처에서 화재책임소재 및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분리발주로 인한 책임 불분명으로 인천교육청은 손해배상을 전혀 받지 못 했다.

◇ “분리발주, 건설근로자 보호 미흡해”

건설공사에서는 각종 산업재해로부터 근로자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 2011년 기준 건설현장의 산재 사망자는 621명에 달한다. 1년 내내 매일 1.7명꼴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셈이다. 전 산업 중 건설업 내 산재사망자가 가장 많다.

그러나 분리발주를 할 때는 종합관리 역량이 저하돼 품질 및 안전확보가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보호 미흡의 문제는 건설근로자뿐 아니라 2차 하도급자인 자재·장비업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와 관련해 앞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분리발주가 다단계 불법하도급, 임금체불, 퇴직금 및 4대보험 관리부실 등으로 노동자들에게 이중의 고통만 안겨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 ‘건설산업통합법’ 제정 요구 이어져

이같은 문제점들로 인해 전기, 정보통신, 소방, 문화재수리업 등 건설관련 공사업에 관한 규제체계를 통폐합해 ‘건설산업통합법’을 제정하자는 목소리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소관부처가 다른 건설관련 시공 및 용역에 관한 사업규제 △민법에 대한 특별규정에 해당하는 건설 도급 및 하도급에 관한 규제 △시공관리에 관한 사항 및 처벌기준 등을 건설산업통합법에 일괄적으로 수용하자는 것이다.

통합법 제정에 앞서 단기적으로 전기 및 정보통신공사에 대한 분리발주 의무규제부터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민간공사의 경우 발주자의 자유의사에 일임하고, 공공공사는 국가 및 지방계약법령으로 일원화하자는 내용이다.

실제로 미국, 일본 등 외국 건설공사 업종의 분류와 체계는 단일법에 의해 통합적으로 운영된다. 일본의 경우 전기, 정보통신, 소방공사업이 건설업에 포함돼 있고, 미국 역시 건설업등록제를 도입한 주에서는 앞선 업종을 건설업으로 분류한다.

현재 건설업계에서는 통합발주가 이뤄지면 공사수행의 효율성과 시공품질이 향상될 것으로 내다보는 시각이 많다.

한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통합발주가 이뤄지면 하자책임 부분이 명확해지고 발주자 입장에서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구조물 내에서 업체들이 공정관리를 따로따로 하는 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이다”라며 분리발주 관련한 제도적 개선을 촉구했다.

저작권자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