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주식투자에 나섰다가 혼 줄이 난 지인 김배형(가명‧ 55)씨. 그의 행동을 보면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이 얼마나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오는 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그는 한 주식전문가로부터 추천을 받아 대형 건설사의 주식 1억8000만원 어치를 샀다. 이 종목을 선택한 것은 가격이 고점에서 많이 떨어져 메리트가 있고 영업 실적도 나쁘지 않은 점도 작용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급속히 위축되면서 주가는 오르기는커녕 바닥 모르게 떨어지기만 했다.

매입한 주가에서 20% 정도 하락했을 때 김씨를 만났다. 위험관리 차원에서 일부를 파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조언을 건넸다. 하지만 그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까짓 거 안 되면 자식한테 상속하죠 뭐.” 해외수주가 많은 대형 우량 건설주니 다시 오를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주식을 몰래 팔았다는 사실을 1년 뒤에 뒤늦게 알았다. 다시 김씨를 만났을 때 그는 자존심 때문에 그동안 주변에 말도 못하고 속앓이만 했다고 털어놨다. “주가가 30%까지 떨어졌을 때만해도 버틸만했어요. 하지만 주가 반토막이 나자 더 이상 못견디겠더군요. 스트레스로 하루하루가 후회와 악몽의 연속이었어요.” 그가 힘겹게 말하는 동안 앞머리에 희끗희끗한 새치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반토막 난 주가로 맘고생이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이제는 많이 알려진 '손실 회피(Loss aversion)'이론의 핵심은 사람들이 손실과 이익에 대해서 비대칭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들은 이익보다 손실에 더 예민하게 반응 한다는 것이다. 가령 100만원을 얻는 것보다는 100만원을 잃어버리는 것이 훨씬 고통스러울 것이다. ‘전망 이론’을 통해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심리학자·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이익으로 얻은 즐거움보다는 손실로 얻는 고통이 2배(1.5~2.5배) 정도 크다고 했다.

사람들은 손실을 끔찍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예상 자체만으로 바짝 움츠려든다. 가령 사람들이 배우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쉽게 이혼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은 현상유지보다 잃어버리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결혼 생활 연수가 길어질수록 이혼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골프에서도 손실회피 현상이 나타난다. 똑 같은 조건에서 퍼팅 실험을 한 결과 파(par) 찬스 성공률이 버디(birdie) 찬스 때보다 3.6% 포인트 높다. 버디 찬스는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파로 그쳐 벌타(손실)는 없다. 하지만 파 찬스에서 실패하면 곧바로 벌타를 먹는다.이러다보니 파 찬스에서는 성공을 위해 정신을 집중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런 집중력이 높은 성공률로 귀결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사람들이 이득보다는 손실을 보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 발버둥치는 지도 모른다.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집을 사지 않는 것은 ‘집값이 향후 오르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일까, 아니면‘집값이 더 떨어질 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전자는 투자재로서 기대수익이 기대에 못미친다고 판단한 때문일 것이고, 후자는 수요자들의 손실 회피를 행동으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 전자나 후자 모두 주택시장에서 수요 부족으로 이어진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를 보면 후자(손실 회피)에 좀 더 무게가 실리지 않나 생각된다. 주변에 집을 샀다가 집값 급락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하우스푸어를 지켜보는 젊은 층으로서는 ‘주택 구입=하우스 푸어=손실’을 쉽게 연상하기 때문이다.

불황기에 수요자들이 새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도 손실이라는 일종의 미래의 불확실성을 회피하려는 움직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는 새 아파트보다 재건축이나 재개발 대상의 낡은 아파트를 선호한다. 그래서 완공된 지 12~17년을 분기점으로 그 이후에는 오히려 재건축 대상 아파트가격이 올라가는 기현상이 나타난다. 재건축이나 재개발은 미래의 기대를 먹고 자라는 생물체다.하지만 불황기에는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해도 돈을 번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조합원들이 청약통장을 써서 일반 분양을 받는 것보다 더 비싸게 새 아파트를 배정받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아예 현물(아파트)보다는 현금으로 달라는 조합원들의 요구(현금청산)도 크게 늘어난다.물론 재개발, 재건축을 사려는 수요가 없는 것이 아니다. 미래의 불확실성만큼 가격을 할인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가격이 절대적으로 싸지 않으면 굳이 매입을 하지 않으려는 보수적인 심리다. 미래가 불안하니 당장 코앞의 이익에만 사람들이 움직인다.

이처럼 불확실한 미래가 계속되면 사람들은 미래보다 현재를 선호하는 ‘현상 유지편향(Status quo bias)’이 나타난다. 당장 입주해서 주거의 효용을 누릴 수 있는 새 아파트를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경향일 것이다.

저작권자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