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달러 강세가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새 뇌관으로 부상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로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폭증하면서 달러 조달이 여의치 않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인 자금 의존도가 높은 신흥시장에서는 달러 강세에 따른 현지통화 약세, 이와 맞물린 외자 유출로 인한 외환위기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 소식에 원/달러 환율 급락

한국은행은 지난 19일 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와 6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계약기간은 오는 9월 19일까지 최소 6개월이다.  

한·미 간 통화스와프 체결은 이번이 두 번째다. 한은과 연준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0월 30일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연준은 이번에 한국 외에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멕시코. 싱가포르와도 함께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었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원/달러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은 20일 급락세로 돌아섰다. 전날 11년 만에 최고인 1285.7원로 하루 새 무려 40원이나 오른 원/달러 환율은 이날 전날보다 32원 내린 1253.7원으로 거래를 시작해 장 초반 20원대의 낙폭을 유지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한·미 통화스와프 효과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이날 출근길 기자들에게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 국내 외환시장 불안 완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연준과 한은은 계약 체결을 합의한 것이고, 이제 계약서 작성에 들어갈 것"이라며 "계약서가 작성되면 곧바로 달러화를 시장에 공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또 "코로나19 확산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그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달러화 부족에 따른 환율 상승 등의 부작용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너도나도 달러 사재기...세계 경제 다음 뇌관은 '킹 달러' 

문제는 통화스와프 계약으로 달러 조달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여도, 달러 강세 흐름이 쉽게 진정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확산 불안에 글로벌 증시를 비롯한 위험자산시장에서 자금이 계속 유출되고 있어서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꼽히던 미국 국채와 금까지 팔아치우며 달러로 달려들고 있다. 불안할 때는 현금이 왕인데, 그 중에서도 달러가 최고라는 인식이 금융시장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최근 "치솟는 달러가 세계 경제에 (코로나19 다음 가는) 큰 골칫거리가 됐다"고 진단했다. 통신은 연준이 이달 들어 기준금리를 두 차례나 인하했지만 달러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데 실패했다며, 그 사이 신흥시장에서는 기록적인 자본유출이 일어나고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인 달러를 쌓아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달러 강세는 기업과 정부의 달러빚 상환 부담을 높이는 요인이다. 채무 부담이 커지면 안 그래도 위축된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에 힘이 실리기 어렵다. 경기침체에 대응한 정부의 재정확대에도 제동이 걸린다.

신흥시장은 더 난처한 입장이다.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 인하 같은 통화완화에 나서려면 환율 불안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리가 떨어지면 현지통화로 표시되는 자산 가치가 약세로 기울어 외자유출을 부채질할 수 있다. 이는 신흥시장에 유입됐던 자금이 달러자산으로 몰려 달러 강세를 더 자극하는 악순환을 일으키기 쉽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최신 보고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예상 밖의 달러 강세는 세계 무역 성장률 부진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신흥시장에 대한 달러 유입이 둔화하면서 자금조달 환경이 나빠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지 45일 만에 신흥시장에서 유출된 자금은 약 300억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9일 102.99로 올해 저점인 3월 9일 94.89에서 8.5%가량 올랐다.

BIS에 따르면 주요 무역상대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 이른바 명목실효환율(NEER) 기준 달러 값은 지난 17일 플라자합의 이듬해인 1986년 이후 3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플라자합의는 미국·영국·독일(당시 서독)·프랑스·일본 등 당시 주요 5개국(G5) 재무장관이 미국 뉴욕에 있는 플라자호텔에 모여 달러의 초강세 행진을 막기 위한 시장 개입에 합의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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