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빈소에서 조문객이 조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샐러리맨 신화'를 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9일 오후 11시50분 김 전 회장이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부터 건강이 나빠져 1년 정도 투병 생활을 했다. 줄곧 베트남에서 지내던 김 전 회장은 지난해 말 건강 악화로 귀국했다.

1960년 대학 졸업 후 섬유 수출업체 한성실업에 근무하던 김 전 회장은 1967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창업한 대우실업을 1990년대 말 국내 재계 2위까지 키우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꼽혔다.

창업 첫해 싱가포르에 58만달러의 트리코드 원단과 제품을 수출했고 다음해 대통령 표창을 받으면서 고속성장 가도를 달렸다. 1969년에는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지사를 설립했고 1970년대 들어 한국 기계와 새한자동차, 옥포조선소 등을 인수하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그 결과 대우는 창업 15년 만에 국내 4대 재벌로 성장했다. 특히 해외 영업에서 강점을 보인 김 전 회장은 박정희 정권에서 가장 두드러진 기업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1990년대에는 동유럽으로 발을 넓히면서 세계경영에 더욱 매진했고 1998년 현대에 이어 재계 2위까지 올라왔다. 당시 대우그룹은 41개 계열사와 600여개의 해외 네트워크를 보유했다. 자산총액은 77조원 가까이 커졌다.

그러나 1997년 11월 외환위기로 내리막을 걷는다. 1998년 대우차-제너럴모터스 합작이 흔들렸고 회사채 발행 등이 제한되면서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계열사를 10개로 줄이는 등의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지만 1999년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그룹이 해체됐다.

분식회계 혐의를 받던 김 전 회장은 검찰 수사를 피해 5년 8개월간 해외에서 도피 생활을 하다 2005년 6월 귀국해 조사를 받았다. 역대 최대 규모인 21조원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징역 8년 6월과 추징금 19조9254억원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2008년 특별 사면으로 나온 뒤 베트남으로 나가 최근까지 글로벌 인재양성 프로그램에 전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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