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아라비아의 석유시설 2곳을 공격한 배후가 이란이라는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자국 시설 공격에 이란산 무기가 사용됐다는 초기 조사내용을 내놓은 데 이어, 드론과 미사일 잔해를 바탕으로 한 조사 결과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또한 CNN을 비롯한 외신들은 미 당국자를 인용, 드론과 미사일이 사우디 석유시설 북쪽으로부터 날아왔으며 이란 기지가 발원지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도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미국이 이란과의 핵합의를 깨고 다시 제재를 가하면서 고립된 이란이 미국 동맹국인 사우디를 공격한 것이다. 블룸버그는 17일(현지시간) "미국이 계속 이란의 석유수출을 제로(0)로 묶어 정부를 파산시키려 할 경우, 이란에게는 미국의 동맹국인 사우디의 석유수출을 막을 힘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 "사우디 척추가 부러졌다"

미국의 제재로 돈줄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이란의 이슬람 혁명수비대는 물러서기보다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예멘, 심지어는 아프가니스탄에서까지 점점 더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미국이 이란 제재를 해제했던 2015년 핵합의에서 탈퇴하겠다고 통보한 근거로 작용하기도 했다. 수비대의 입장에서 미국의 제재는 거의 동원령처럼 인식된다. 그동안 수비대는 자신들을 미국 군사권력에 대항한 중동 최후의 수호자로 지칭해왔다.

16일자 이란의 케이한 신문에서 1면 헤드라인을 장식한 문장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척추가 부러졌다. 미국과 알 사우드 왕가는 슬픔에 잠겼다!"였다. 케이한 신문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편집장을 직접 지명하는 매체다.

◇ 이란 중동 영향력 강화

이란의 대담한 접근법은 장기적 게임플랜의 일환이다. 이란은 미국이 점진적으로 중동지역에서 발을 빼는 상황에서 이득을 모색하고 있다. 그리고 오는 2020년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중동에 대한 미국의 개입 수위는 계속해서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국제관계유럽위원회의 신지아 비앙코 아라비아반도 리서치 연구원은 "수년 동안 미국은 중동에 대한 입장을 수정하려 해왔으며, 종국에는 가벼운 수준의 개입만 할 것이다"라며 "이는 아람코 피격사태와 관련해 중요한 부분이다. 수비대가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새로운 한계점을 시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피에르 노엘 경제 및 에너지안보 연구원에 따르면, 사우디 석유시설 피격사태는 중동지역의 세력 균형에 지속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얼마나 변화 중인지 무참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는 "사우디는 50년 동안 준비했던 전쟁에서 30분 만에 패했다"라며 "그들(사우디)은 국내 산유량의 50%를 이란에게 빼앗겼으며, 미국의 도움도 받기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전완료" 군사개입 가능성

이란이 사우디 석유시설 공격 배후라는 정황이 나오면서 군사옵션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장전완료(locked and loaded)'라는 표현을 써가며 군사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는가 하면, 미 정계에서는 이란에 보복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AFP통신에 따르면 펜스 부통령은 이날 워싱턴DC에서 열린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 행사에 참석해 한 연설에서 "미국은 장전완료가 돼 있고 우리의 이익과 지역 동맹을 방어할 준비가 돼 있다, 실수하지 말라"고 말했다. '장전완료'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5일 사우디 석유시설 피격 사건과 관련한 입장을 트위터를 통해 밝히며 처음 사용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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