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이제 배가 고프기보다는 배가 아픈 것이 문제입니다" 

원로 경제학자들의 말이다. 이제 주택보급률이 전국적으로 100%를 넘어 양적인 부족문제는 해결됐으니 부동산을 둘러싼 갈등이나 분쟁이 문제라는 말이다. 부동산 문제는 단순히 시장 논리보다는 이데올로기 싸움 영역으로 전개될 때가 많다. 

어찌 보면 강남 아파트는 첨예화된 부동산 계급 갈등의 상징이다. 지인이 강남 아파트를 사서 돈을 벌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배가 아프다. 그 아파트를 사기까지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관심이 없고, 그 결과만 부럽고 질투가 난다.

왜 그런 생각을 가질까. 부동산시장에서 배가 아픈 이유는 2가지다. 

첫째, 아파트 투자(투기)의 대중화 때문이다. 표준화된 주택인 아파트는 사실 복잡한 권리관계 분석이나 투자기술이 없어도 초보자라도 누구나 투자가 가능한 범용 상품이다. 

사실 암울한 일제 시대에도 투기가 극성을 부렸다. 일확천금을 얻기 위한 광산 투기는 물론 주식, 땅 투기 열풍이 나타났고, 곡물시장에도 투기꾼들이 불나방처럼 몰려들었다. 

그러나 투기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은 재력이 뛰어난 지주나 친일파 같은 극소수이었다. 일반 범부들과는 관계가 없는 영역이었다. 투기로 파산을 하더라도 참여자들이 많지 않았기에 그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아파트 재테크는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없다. 아파트는 돈과 결단력만 있으면 누구나 투자 대열에 나설 수 있다. 

최근 강남 재건축아파트나 위례신도시 아파트 분양에 당첨된 사람들은 특별한 재주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청약통장에 가입해 돈을 꼬박꼬박 불입하고 무주택자격을 유지한 게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바로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들의 가까운 이웃이다.

스위스 출신의 영국 작가 알랭드 보통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사람에 대해서만 질투를 한다. 말하자면 우리의 고교 동창생이나 회사동료 같은 준거집단이 성공할 때 질투를 느낀다. 

하지만 우리 자신보다 비교하기 어려운 상층 집단이 같은 성공을 하더라도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 사촌이 논을 사야 배가 아프지, 대기업 회장이 수백 만평 논을 사는 것은 배가 아프지 않다는 얘기다. 바로 '배아프리즘'은 나와 동질적 집단이나 동질적 집단이라고 느끼는 대상에게서만 생기는 감정인 것이다.

둘째, 성공을 이룰 뻔한 것을 못 이룰 때 아쉬움이 더 큰 법이다. 먼 곳이 아니라 바로 코앞의 고기를 놓쳐야 상실감이 큰 것처럼 말이다. "조금만 무리를 해서 강남 아파트에 투자했더라면 큰돈을 벌었을 텐데 왜 그랬을까" 서울 강북에 살고 있는 많은 40~50대 직장인들은 대출을 최대한 끌어들이면 강남아파트를 잡을 수 있었다. 

아파트의 자산화가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을 때는 강남북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어어~"하는 사이 기회를 다 놓쳤다. 지금 돌이켜보면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다. 이런 현상은 미완성된 과제에 집착하면서 미련을 가지는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아파트, 특히 강남 아파트에 배가 아픈 사람들이 많은 것은 투기의 대중화와 자이가르닉 효과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배 아픈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그렇게 좋은 현상이 아니다. 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해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고 근로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 층에게 더 심한 좌절을 안겨줄 수 있다. 자본의 가치에 의해 땀 흘리는 노동의 가치가 폄훼당하지 않을 까 두렵다. 아파트값이 급등하는 일이 없다면 배 아픈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래저래 주택시장은 안정이 최고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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