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풍파 겪으며 은둔 활동, '기생충' 칸 최고상 영예로 결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건강상의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미국에 머물며 대외 활동을 자제해 온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뚝심이 결실을 맺었다. CJ의 영화 사업을 이끈 이 부회장의 25년 간 노력으로 세계 최고 영화제에서 최고 상이라는 명예를 얻은 것이다. CJ는 이를 계기로 업계 3위까지 떨어진 자존심 회복은 물론 역대 최대 실적을 기대하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지난 25일(현지 시간) 저녁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황금종려상은 칸영화제 최고상으로, 한국 영화의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영화가 칸영화제 본상을 수상한 것은 이창동 감독의 '시'(2010년, 각본상) 이후 9년 만이기도 하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영화 '기생충'으로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포토콜에서 상패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은 "저는 12살의 나이에 영화가 되기로 마음먹은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다"며 "이 트로피를 손에 만지게 될 날이 올 줄 몰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수상 소식에 기뻐한 것은 봉 감독과 배우들만이 아니다. 영화의 '책임 프로듀서'로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던 이 부회장도 벅찬 감격을 느꼈다. '기생충'은 CJ가 배급·투자를 맡았다.

이 부회장은 10년 만에 칸을 방문해 기생충 지원 사격에 나서기도 했다. 이 부회장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5년 만이다. 기생충에 대해 애착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폐막식엔 참석하진 못했지만 기생충 수상 소식에 크게 기뻐했다는 후문이다.

이 부회장의 영화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1993년 삼성그룹에서 분리·독립한 CJ는 기존 사업과 전혀 접점이 없던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을 주력 사업 분야로 결정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미국 현지법인 이사로 재직하던 중 스티븐 스필버그가 창립한 영화사 '드림웍스'와 계약을 맺고, 1995년 이재현 회장과 함께 3억달러를 투자해 아시아 배급권(일본 제외)을 따내기도 했다.

이후 IMF 시절인 1998년, 서울 강변 테크노마트에 국내 첫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를 선보였고, 2000년에는 영화 배급 투자사인 CJ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영화 배급 사업에도 나섰다.
하지만 지난 박근혜 정권 때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정치적 풍파를 겪기도 했다. 영화 '변호인'과 '광해'를 제작한 뒤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정부가 이 부회장의 퇴진을 종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이 부회장은 2014년 질병 치료를 이유로 미국으로 건너갔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올해는 3월 개봉한 영화 ‘우상’에 이어 ‘기생충’의 크레디트에 책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리는 등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꾸준함과 뚝심이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다. 특히 CJ는 지난해 롯데에 밀리며 3위까지 업계 위상이 떨어진 영화 산업이지만 올해 초 '극한직업'이 1600만 관객을 돌파했고,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반전을 노리고 있다.

'기생충'은 전 세계 192개국에 선판매돼 한국 영화 역대 최다 판매 기록을 경신해 국내에서도 흥행이 예고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기생충이 지난 1년 제작된 모든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았다"며 "영화 기생충도 너무 궁금하고 빨리 보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생충의 수상으로 이 부회장은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 받는 것과 동시에 화려한 컴백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됐다"며 "영화 업계는 CJ는 물론 이 부회장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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