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국민가격31 이미지/사진=연합뉴스

‘국민가격’, ‘극한할인’, ‘초격차MD’. 

유통 업체들이 저마다 키워드를 내걸고 ‘100원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적은 물량의 ‘미끼상품’을 끼워 팔거나 경쟁사보다 10원, 100원 싸게 파는 수준이 아니다. 

반값을 넘어 경쟁 제품보다 3분의1 수준인 PB 상품까지 내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중이다. 2010년 초반 유통업계에 불었던 ‘10원 전쟁’이후 10여년 만에 불어닥친 초저가 전쟁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요즘 싸게 안 팔면 살아남기 힘들다”며 “유통시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온라인쇼핑몰, 대형마트 할 것 없이 저가마케팅은 필수 전략이 됐다”고 말했다.

◆10원 더싸게·100원 특가

초저가 전쟁의 시발점은 이마트다. 이마트는 지난 1월부터 ‘국민 가격’이라는 이름으로 매달 1·3주 차에 특정 식품을 큰 폭으로 할인하며 초저가 마케팅의 불씨를 당겼다. 

이후 다른 경쟁사는 물론 온라인 쇼핑몰 등 모든 유통업계가 초저가 전쟁이 가세했다. 삼겹살·전복·라면·과일 등 모든 생필품에 이어 심지어 택배까지 100원 단위 전쟁에 돌입했다.

한 봉지당 390원짜리 라면이 등장했는가 하면 1ℓ에 4만~5만원 하는 노니 주스는 9900원이라는 가격 택을 달고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이마트가 내놓은 8만9000원짜리 에어프라이어는 이틀 만에 1000개가 완판됐다. 990원 삼겹살과 목살은 일주일 만에 한 달 분량인 300t이 판매됐다. 2월 등장한 반값 광어회(1만9800원)는 일주일간 4만5000팩이 팔렸다.

‘이마트의 국민가격’은 4탄까지 나왔으며 홈플러스는 이달 내내 31개 품목을 할인 중이다. 온라인에서는 경쟁이 더 뜨겁다. 11번가는 지난해까지 11월에만 진행하던 십일절 할인 이벤트를 월간 행사로 바꿔 2월부터 매달 연다. 지난 11일 열린 두 번째 행사에서는 하루 누적 방문객이 550만명에 달했다.

위메프는 지난해 11월1일 이후 3월20일까지 140일간 매일 하루도 빠짐 없이 할인행사를 진행했다. 에어팟·공기청정기·아이폰 등 인터넷 최저가 대비 50% 이상 깎아주는 행사로 큰 화제를 모았다. 

지난 20일 위메프가 운영하는 쇼핑앱 원더쇼핑에서는 100원 특가 상품을 내놨다. 최초 판매가 6만9000원인 먹는 콜라겐 제품이 100원에 등장했다.

◆제 살 깎아 먹기 경쟁 우려

업계가 초저가 전략으로 생존 경쟁을 펼치면서 제 살 깎아 먹기 식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통업체의 가격 경쟁은 10년 전에도 벌어진 적 있다. 2010년 초 경기불황으로 소비가 주춤하자 유통사들이 경쟁사보다 한 푼이라도 싸게 팔겠다며 10원 전쟁을 벌인 것. 하지만 최근엔 최저가 경쟁을 벗어나 반값, 3분의1이라는 파격 할인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통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 때문인지 유통 업체와 납품 업체의 영업이익이 동시에 하락하고 있다”며 “대형마트나 소셜커머스 등 대부분이 지난해 영업적자를 기록하거나 영업이익이 줄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적자라고 해도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는 판단 때문”이라며 “역마진이 커지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독이 된 사례도 있다. 2000년대 초반 22곳의 매장을 운영하던 한국까르푸는 지나친 최저가 정책을 고집하다 역풍을 맞았다. 최저가를 위해 납품업체에 지나친 단가 인하를 강요했고 일부 납품업체는 결국 한국까르푸에 납품을 거부했다. 

까르푸가 문을 닫은 이유에는 낮은 품질력과 경쟁업체의 출범 등 여러 요인이 겹쳤지만 저가 정책으로 인한 납품업체와의 마찰도 한몫했다는 설명이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좋은 제품을 싸게 산다는 측면에서 매력적인 마케팅인 것은 맞지만 저 제품을 저 정도에 팔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며 “지나친 가격경쟁으로 둘 중 하나가 살아남는 것이 아닌, 둘 다 죽을 수 있는 공멸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 경쟁 과정에서 소비자는 다소 이익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싸움이 지나간 자리에 공멸이 있다면 그 피해는 결국 소비자의 몫이 아닐까.  업계 종사자들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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