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B 하나은행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을지로 본점 강당에서 '은행장과 함께하는 소통과 공감' 생방송 간담회를 개최했다.사진은 지성규 KEB하나은행장(왼쪽)이 간담회에서 직원들과 대화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최근 시중은행과 관련해 눈에 띄는 얘기 중 하나가 은행장이 직원들과 소통 행보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계획되지 않은 만남인 번개를 하기도 하고 매달 식사 자리를 마련해 대화를 나눈다고 합니다.

지성규 KEB하나은행장은 이달 초저녁 본점 인근 호프집에서 직원들과 치맥 파티를 열었습니다. 지 행장의 깜짝 방문으로 이뤄진 이 파티에서는 한 직원이 도서관과 피트니스 센터를 24시간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에 그 자리에서 "알겠다"는 대답을 해서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합니다.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은 평일 오전에 인트라넷에 즉석 만남을 제안하고 희망하는 직원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이대훈 NH농협은행장은 매달 '은행장과 함께(With CEO)' 행사를 통해 직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내정 후 수개월간 수행원 없이 혼자 영업점을 둘러보면서 임직원을 격려했습니다.

증권사 등 다른 금융권에 비해 조직문화가 경직된 것으로 평가되는 은행장이 직원들과 직접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소통하고 의견을 반영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권위를 내려놓고 작은 것이라도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은 직접 챙기겠다는 생각도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에 반가움이 들고 미담이 된다는 것은 여전히 생소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은행장이 여전히 구성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회사를 만들어가는 리더이기보다 제왕에 가깝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하나은행의 피트니스센터 사례는 군대의 모습과 똑 닮았습니다. 대대급 부대에 상급부대인 사단장이 방문해 사병과의 대화를 합니다.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한 병사가 손을 번쩍 들고 "체력 증진을 위한 운동시설이 부족합니다"라고 당차게 건의합니다. 사단장은 "좋다"라고 흔쾌히 대답하고 대대장에게 당장 만들어주라고 지시를 내리고 며칠 후 부대내에 피트니스 센터가 만들어집니다.

얼핏 보면 훈훈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문제가 있습니다. 사단장의 이런 행동은 상급 부대장으로써 모든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란 인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작전 상황에서 상급부대장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큰 틀에서 대대의 운영방향을 제시해야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세부적인 부대 운영은 직접 당사자인 대대장이 맡아서 해야합니다.

그동안 피트니스센터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은 대대의 예산 문제일수도 있고 수요가 많지 않아 설치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어서 일수도 있습니다. 300~400명 중 10%도 안되는 사람이 원하는 일에 예산을 집행하는 것은 낭비입니다. 다른 측면에서는 수요는 많지만 소통의 통로가 막혀 결정권자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일반 기업의 문제로 돌아와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에는 각각의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부서가 있고 부서장이 있습니다. 회사 전체의 방향은 최고경영자가 결정해야 하지만 실질적인 업무처리를 하면서 어떤 효과와 부작용, 이점과 문제점이 있는지는 실무자의 의견이 반영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각자의 업무에 책임을 져야 할 부서장은 소신 있는 결정을 하지 못하고 최고경영자만 바라보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경영 효율성은 떨어지고 그만큼 경영 성과도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최고경영자가 한 달에 몇십만원 많아야 몇백만원 더 쓰는 결정도 마음대로 못하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회사의 체계, 경영효율성과 성과보다 권력을 뽐내는 게 먼저라면 얼마든 해도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대로 결정하고 명령하기에 앞서 해당 사안에 대해 세부적인 내용까지 가장 잘 알고 있는 담당자에게 의견을 묻는 게 먼저입니다. 자신이 맡은 직책이나 업무, 능력, 판단을 최고경영자가 수용하고 존중하면서 누구나 가감 없이 의견을 내놓을 수 있게 하는 것이 경직된 조직문화를 바꾸고 원활한 소통으로 회사가 군더더기 없이 빠르고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첫걸음입니다.

저작권자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