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사진:연합뉴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재선임 실패를 두고 재계와 일부 정치권에서 국민연금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정부와 다를 바 없는 국민연금이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기도 전에 조 회장을 죄인 취급했을 뿐 아니라 사기업의 경영권에 개입했다는 것입니다. 연금사회주의의 대표 사례이고 앞으로 더 확산할 것으로 보여 우려가 된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보수 야당에서는 국민연금이 기업의 자율성과 자유시장질서를 전면 훼손했다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5% 이내로 제한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을 서두르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아니면 국민연금을 비롯해 사회 전반으로 커지고 있는 주주권 강화에 대한 두려움 탓에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방어 전략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국민연금만 탓하는 것은 그들이 늘 원하고 바라는 시장 친화 주의 내지 절대적 가치로 여기는 시장 논리와 배치된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에 반대표를 던진 지분율은 36%가량이고 이 중 국민연금은 3분의 1에 못 미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조 회장 연임안 부결에는 국민연금이 주총 하루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20%가 넘는 지분이 오롯이 국민연금의 반대 의사 표명에 따라 움직였다고 보는 데는 무리가 있습니다. 반대표의 상당수는 외국 기관 투자자의 지분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외국인 투자자가 대한항공에 대한 국내의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을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자본시장의 자금이 정서보다는 이익을 따라 움직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게 대한항공의 가치를 높이는데 더 낫다는 판단을 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주식시장에서 조 회장의 재선임안 부결 소식에 대한항공의 주가가 급등했다가 사실상 경영 지배력을 계속 행사하는 데 별 문제가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 다음날은 내림세를 탄 것은 이를 증명합니다.

최근 주주권 강화 분위기 속에서 여느 때보다 주목을 받았고 반대 의사를 미리 표명하기는 했지만 국민연금이 과거와 비교해 특별히 달라졌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조 회장에 대한 국민연금의 태도는 이전과 변함이 없고 주총에서 특정 안건에 대해 표결을 하는 것은 기본중에서도 기본에 해당하는 주주권일 뿐입니다.

주식시장에서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주식으로 주주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은 정당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국민연금이 다른 주주와 달리 기업의 주식을 더 싸게 샀거나 거저 얻은게 아니라면 행사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정당하고 당연한 권리란 뜻입니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이 조 회장의 경영권을 빼앗았다는 주장은 정당한 주주권을 행사했기 때문에 잘못됐다는 말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어불성설이라고도 합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제약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누구라도 시장에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권리를 제약할 수 없습니다.

지불한 대가만큼의 서비스나 재화, 권리를 얻지 못하는 시장은 이미 시장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보유한 주식만큼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은 주식회사가 아닙니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만약 국민연금의 권리 행사가 못마땅하다면 아예 국내 기업의 지분을 보유할 수 없도록 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물론 주주권 강화가 시장 질서를 망친다고 주장하는 일부가 생각하는 시장 논리가 정치 권력자의 입맛이나 심기에 따라 한 기업을 살리거나 죽이는 방식을 말하는 것이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상식의 시장은 수요와 공급, 정당한 가치와 가격, 권리가 지배하는 곳이지만 이런 시장에서는 오직 소수 정치 권력자의 뜻만이 지배력이 있고 그에게 잘 보인 일부만 살아남는 게 마땅한 일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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